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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두려운 직장인입니다

쉼표가 물음표가 되는 시간

by 라디

나는 연휴를 별로 안 좋아한다. "뭐라고? 당신 직장인 맞아요?" 맞다. 직장인 8년 차다. 별종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심하게 말하지는 말아 달라. 불안장애의 애환이니까.


이번 추석 연휴는 정말 길었다. 나는 휴가까지 붙여서 10일을 쉬게 됐다. 모순적이게도 황금연휴는 놓치기 싫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중적이다. 연휴가 싫다면서 휴가는 왜 붙였냐고? 나도 모르겠다. 그냥 남들 다 쉬는데 나만 안 쉬면 손해 보는 거 같아서. 아니, 정확히는 남들이 "어? 연휴에 휴가 안 붙였어요?"라고 물어볼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내가 긴 연휴를 싫어한다는 걸 깨달은 건 3년 전이었다. 그해 설 연휴, 5일을 쉬게 됐다. 첫날은 괜찮았다. '아, 드디어 쉰다.' 둘째 날도 나쁘지 않았다. 밀린 드라마도 보고 늦잠도 실컷 잤다. 그런데 셋째 날부터 이상했다. 뭔가 불안했다. 이상하게 연휴 중반쯤 되면 마음이 깊은 심연으로 빠진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불안' 때문이었다.

연휴 셋째 날.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켰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가 바로 후회했다. 피드엔 남들의 알찬 연휴가 가득했다. "가족 여행 왔습니다. 제주도 날씨 최고!" "연휴 동안 읽을 책 10권 준비 완료" 스크롤을 내릴수록 초조해졌다. 특히 같은 동료가 올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대형 강연장 무대 위의 모습. '교육청 초청 강연'이라는 해시태그가 눈에 띄었다.


'아,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 보고서도 써야 하고 다음 달 연수 준비도 해야 하고 밀린 독서(하는 척)도 해야 하는데. 그런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사이를 왕복할 뿐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배가 고픈 건지, 심심한 건지, 불안한 건지 구분이 안 갔다. 나참, 쉬는 것도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라니. 연휴가 고문이 되는 순간이다.


"길게 쉬는 게 익숙지 않고 오히려 괴로워요." 의사에게 나의 마음을 털어놨다. "직장인은 연휴에 쉬어야죠. 넷플릭스 보면서 하루를 보내도 되고, 소파에서 릴스만 봐도 돼요. 그게 휴식이에요." 의사의 말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고 싶었다. '선생님도 주말에 학회 가고 강의 다니잖아요. 선생님도 쉬지 못하는 사람 아닌가요?'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사람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내담자의 슬픈 습성인가. 아니면 5분이라는 짧은 진료 시간에 굳이 논쟁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걸까.


웃긴 건, 바쁜 연휴도 별로였다는 거다. 작년 추석엔 정반대였다. 강연이며 외부 협업이며 정말 바쁘게 보냈다. 연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일정이 빼곡했다.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KTX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그땐 행복한 줄 알았다. '나도 이제 좀 인정받는구나.' 그런데 그것도 착각이었다. SNS를 켜니 더 큰 무대, 더 유명한 행사 사진들이 올라왔다. '나는 작은 연수인데, 저 사람은 전국 단위 컨퍼런스구나.' '나는 지역 교육청인데, 저 사람은 교육부 행사네.' 비교는 끝이 없었다. 에라이,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연휴 마지막 날 밤. 내일 출근이 두려우면서도 안심됐다. 이 모순적인 감정을 누가 이해할까. 쉬는 게 일보다 힘든 사람의 심정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구나.' 불안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 아침. 7시 20분. 알람이 울렸다. 평소엔 지옥 같은 소리인데 오늘은 반가웠다.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을 봤다. 10일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래도 옷을 갖춰 입으니 조금 사람 같았다.


오전엔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살아있음을 느꼈다. 공문도 확인하고, 보고서도 작성했다. 연휴 동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스트레스받았던 일들이 막상 하니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아, 일하기 싫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동료가 옆에서 웃었다. "벌써요? 오전까지는 신나 보이더니." "그러게요. 저도 모르겠어요." 하... 정말 어쩌면 좋니, 나란 녀석. 쉬어도 불안, 일해도 불안. 이러나저러나 참 피곤한 성격이다.


나는 연휴가 싫은 게 아니라, 연휴 동안의 '나'가 싫었던 거다.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쉬면서도 죄책감 느끼는 그 시간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털어 먹지만 이 부분만큼은 정말 나아지지 않는다. 의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지 행동 치료도 병행하면 좋을 거라고 했다. 그래, 언젠가는 진짜로 쉴 수 있는 날이 올까? 연휴가 기다려지는 평범한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약봉지를 뜯으며 생각한다. 다음 연휴는 조금 다를까? 아니면 또 똑같을까? 모르겠다. 그저 내일도 출근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불안장애를 가진 직장인의 연휴 생존기. 참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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