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안에게 자리를 내어주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지만 동료 교사들에게 강의를 하는 연수 강사로서의 시간도 많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늘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해져도 연수 전날은 늘 긴장된다. 강의 주제, 슬라이드, 멘트 하나까지 다 점검한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시연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이게 바로 나라는 걸 안다. 완벽주의라기보단 불안 때문이다.
"혹시 망하면 어쩌지?", "실수하지 말자." 그런 마음들이 나를 움직인다. 덕분에 연수 만족도도 높고 다음에도 불러주시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불안은 내 결점이 아니라 내 능력의 연료다.
오늘은 발표 준비를 하다 문득 멈춰 생각했다. 불안이라는 녀석 '너 참 묘하다.' 그는 나한테 거의 직장 동료 같은 존재다. 항상 먼저 출근해서 나보다 앞서 움직인다. "준비 다 했니?" 하며 뒤에서 속삭이는 목소리. 때로는 귀찮지만 이상하게 없으면 허전하다. 예전엔 불안이 오면 겁부터 났다. '또 시작이네, 제발 오늘은 조용히 좀 해줘.'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내 안의 불안은 '못난 나'를 들춰내려는 게 아니라 '진짜 나'를 확인하려는 몸의 반응이었다. 그건 일종의 리허설 같았다. 혹시라도 틀릴까 봐 망설이다가 결국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내 몸의 방어기제. 나는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는 대신 이제 그 에너지를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불안이 올라오면 '좋아, 지금이 집중할 때구나'라고 생각한다. 불안은 내게 브레이크이자 엑셀이다. 때로는 멈추게 하고, 때로는 더 몰입하게 만든다. 요즘은 불안이 찾아와도 예전처럼 피하지 않는다. 그냥 잠깐 같이 앉아 있는다. 커피 한 잔 하듯 그 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불안은 조금씩 잦아든다. 사라지지는 않지만 견딜 만한 존재가 된다.
나는 아마 평생 이 불안과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나쁘지 않다. 불안이 없던 시절의 나는 무모했고 불안이 생긴 이후의 나는 단단해졌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불안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런 말을 건넨다.
"그래, 너 덕분에 오늘도 준비 잘했다."
“고요함은 폭풍이 지나간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배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