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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결국 문을 열었다.

내 불안이 이름을 얻던 순간

by 라디

그날 나는 결국 문을 열었다. "처음 오셨어요?" 나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도망칠 구석이 사라졌다. 접수창구 앞, 간호사가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뭐라고 얼굴이 빨개졌다. 몸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내 손끝이 떨리고, 숨이 조금 빨라졌다. 그리고 나는 곧장 주변을 살폈다. '어?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들이 없네.' 나는 정신과라고 하면 요동치는 사람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왔지?' 여전히 정신 승리를 시도했다.


병원 오기까지 한참 걸렸다. 스마트폰 검색 기록엔 이런 것들이 줄줄이 있었다. '불안장애 증상', '정신과 처음 가보기',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여러 번 병원을 예약하고 번번이 예약을 취소했다. 하지만, 오늘은 꼭 왔어야 했다. 왜냐면 살고 싶었거든. 그날따라 간판이 너무 반짝거렸다. 마음은 구겨져 있는데, 간판은 왜 이렇게 반듯한가 싶었다. 대기실에는 조용함만 가득했다. 물컵 옆엔 잡지 몇 권, 그리고 나와 같은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폰을 만지작거렸고, 누군가는 창밖을 멍하니 봤다. 나는 벤치 끝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누가 나를 알아볼까 봐.


아니, 사실은 내가 나 자신을 마주치기 싫었다. 그 순간 "딩동!" 나의 차례가 왔다는 소리가 울렸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들어갔다. 이 몇 걸음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몇 걸음 안 되는 걸음이지만 나에게는 하늘의 동아줄 같은 걸음이었다.


의사는 조용히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죠?" 그 한마디에, 이상하게 울컥했다. 나는 급히 웃으며 얼버무렸다. "아닙니다. 오랜만에 제 시간을 가지고 좋았습니다." 나는 내가 여기에 오는 정신병 걸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듯 좋은 사람이라는 티를 내었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숙련된 기술로 나에게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의사는 말을 떼었다. "환자분 같은 사람이 많으세요." 단순한 이 한마디가 나를 위로로 감쌌다. "불안장애 같습니다." 그 말이 공중에 떠다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은 멍했다.


'불안장애'라니. 생각보다 단단한 단어였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 말을 듣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조여 오던 무언가에 이름이 붙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다행이었다. 이제는 "나 왜 이러지?" 대신 "아, 불안이 또 왔구나."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치료는 가능한가요? 제가 이렇게 30년 동안 살아왔는데..."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분들이 빨리 좋아지십니다. 약도 있고, 상담도 병행할 수 있어요."


약 봉투를 들고 병원을 나왔다. 약국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이제 나도 불안을 '관리하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집에 돌아와 물 한 잔에 약을 삼켰다. 그냥 물맛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그 물이 유난히 따뜻했다. 불안을 없애겠다는 결심 대신 내 불안과의 동행을 시작한 하루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불안은 여전히 내 옆에 있다. 이 녀석은 나의 원동력이었다. '좋은 대학을 못 가서 백수가 되면 어떡하지?', '직장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덕분이었을까? 나는 현재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렸다. '불안'이라는 녀석에 내가 이끌려 30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는 그와 함께 걷기로 했다. 그 길을 잘 갈 수 있을까? 한참을 또 걱정했다. 불안이다. 이 녀석 또 먼저 가고 싶어 한다. '야! 이제는 좀 같이 걷자!'


그날, 나는 결국 '불안과의 동행'문을 열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아 가는 것이다.” – 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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