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야"라는 가스라이팅
뭐가 맞는 걸까, 정답은 없다.
어제 브런치에 글을 쓴 후 새벽 한 시쯤 정도.
해야 할 말을 몇 번이고 정갈하게 고쳐댔다.
6월에 새로운 작품을 같이 하자던 촬영팀 승진 제안의 대한 답.
긴 장문이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기회를 주신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못하겠습니다. 제 건강에 좀 더 전념하고 싶습니다."
보내야 할 긴 장문을 써놓고 보낼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다.
내가 과연 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이 잔인한 짓을 결국 나 스스로 해야 하다니.
하지만 계속 답을 기다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결국 보냈다.
보내놓고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리던지.
차라리 내 메시지를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분 뒤, 잘 이해했고 알겠다고 답이 왔다.
결국 그걸로 한 달간의 내 깊은 고민이 끝이 났다.
너무 허무했다. 속상했다. 화가 났다. 너무 슬펐다. 답답했다.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풀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고 오후까지도 계속 감정이 이어졌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도 있었다.
퇴근할 때쯤 되니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건강과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해 보자.
계속 속상해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용하자'
프리랜서로 살아내는 동안, 일이 없는 휴식기에 내 마음은 늘 가난했다.
시간은 넘쳐났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을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고 내 금전은 한정적이었기에 최대한 아껴서 버티는 게 전부였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영혼은 죽어있었다.
난 살아있는 시체였다.
눈을 감아 잠을 청하면 다시는 깨고 싶지 않았다.
몸이 붓고, 뇌 혈관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고, 두통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때쯤 마지못해 눈을 떴다.
휴식기가 끝나고 다시 일을 하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해야되, 기회야, 동료들이 날 좋게 봐주면 나에게 다음 일이 들어올 수도 있잖아'
어느 덧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불편하리 만큼 나를 포기하고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가끔은 그런 내 모습이 역겨웠다. 헛구역질이 났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살아있는 한 먹고 사는 문제가 정말 지겨울 만큼 징글 징글했다.
애정으로 일을 하던 내 태도가 일에 매달리는 집착이 되어가고 있었다.
'열심히 해, 최선을 다 해, 후회가 남지 않게끔. 지금보다 더 할 수 있잖아'
나를 몰아붙이고 다그쳤다.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미련했다. 위험할만큼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결과는 뻔했다.
한번 닳아버린 마음은 다시 괜찮아 지지 않는다.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것에 무던했다.
사람에 대한 불신, 일에 대한 좌절감, 어디든 도망가고 싶었다. 이 일만 아니면 돼. 꼴도 보기 싫어.
그렇게 번아웃이 왔다.
스스로에게 입은 상처는 회복이 더디다.
그 당시의 나를 되새기면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마음이 따끔하다.
과거의 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생생하고, 그 마음이 한없이 안쓰럽다.
열심히 한다고 다가 아니더라.
내가 진심이라고 누군가 내 마음을 다 헤아려 주는 것도 아니고.
내 노력을 알아주는건 더더욱 아니다.
진심만으로는 현실과 맞서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요령이 필요하다.
열심히는 안할거다.
차라리 꾸준히 하겠다.
마음을 올인한만큼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조금 덜 상처받고싶다.
내 마음이 최대한 다치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래서 나는 좀 덜 열심히 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