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다 같은 방식으로 진료하는것이 아니었다.
성폭행 피해를 말하며 떨던 나에게
"내가 남자 선생님인데 진료가 괜찮겠느냐"라고
웃으며 물었던 정신과 선생님은 나와 2년간 인연을 맺어온 선생님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성폭행을 경험한 뒤
남성혐오가 생기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엔 한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는 성폭행 피해를 두 눈으로 보고도 방관했다.
심지어 도와달라는 나에게
얼른 일어나서 집에 가라고 했다.
그러니 성폭행을 당한 것이 남자라고 하더라도 모든 남자가 문제는 아닌 것이다.
여자 선생님께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여자가 믿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닌 것처럼.
위로에 '남자'와 '여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산부인과 이야기를 하기 전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꼭 해야만 한다.
그분은, 물고기 선생님이다.
이유는 내가 선생님의 별자리가 '물고기자리'인지 맞춰서 서로 놀란적이 있는데, 꽤 웃겼기 때문이다.
물고기 선생님은
나를 2년간 살아있도록 유지(?)시켜준 귀인이다.
마치 미드 속 여자 주인공이 늘 고민에 빠져있을 때
장난을 치다가도 한두 마디씩 인생의 쓰디쓴 명언을 때려주고는 '나는 가려던 여행길로 다시 떠난다~언젠가 만나~" 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 1 ’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진료를 받다가 우울감이 너무 심해져서 트라우마를 다루시던 여선생님을 찾아갔던 것은 맞지만
그것과 또 다른 의미로 물고기 선생님은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준 의사 선생님이다.
나는 큰 위로를 받은 것이다.
위로의 종류는 다르지만 유쾌한 위로였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물고기 선생님이 병원을 그만두셨고
어디로 가셨는지 아직도 정신과에서 근무를 하시는지 행방을 모르는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땐, 선생님이 진료를 종료하신 뒤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날 펑펑 울었다.
선생님이 너무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2년간 집 근처 병원이 거기뿐 + 선생님의 독특한 화법이 은근(?) 재미있어서 갔던 것도 있지만,
내 마음을 헤아려주신다는 마음을 엄청 받지는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선생님에게 갔던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분은 유일하게 나를 성폭행과 별개인 한 사람으로 관심을 가져주셨다.
내가 입고 온 옷차림을 기억해 주시고 세세히 관심을 가져주시는가 하면
어느 날은 나의 메이크업 콘셉트에 대해 물어보시기도 했다.
가끔은 문학 작품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도 공유할 수 있었고
드라마나 영화 등 예술작품에 대해 토론 아닌 토론을 해본 것도 처음인지라 신선했다.
성폭행의 기억이 당최 사라지지 않아서
폭식도 오고 살이 찌고 불면증에 난리가 났는데
물고기 선생님은 나를 '성폭행 피해 환자'가 아니라
'성폭행 경험이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런 옷을 좋아하고 이런 작품을 좋아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것 같았고 난 그런 시선이 오랜만에 반가웠다.
어쩌면 난
성폭행 피해자, 성폭행 생존자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힘들다가도 정신과에 가는 날이면
오늘은 어떤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오늘은 이 가방을 들고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아, 이건 선생님한테 말해봐야겠다. 와, 어떻게 저런 작품이 나오지?' 하며 메모를 해둔 적도 있다.
그렇게 어느 날은 헤밍웨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제인오스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작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때 강 선생 님은 마냥 동조해주지도 않으셨다.
과감히 내 말을 자르고 훅 들어오셨다. 그리고 반문을 하시기도 했고,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꽤 재미있었다.
나 또한,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성폭행 피해자'는 잠시 잊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고기 선생님은 나를 치유의 길로 안내해 주셨던 것이다.
틀림없이, 나는 자가치유를 하고 있었다.
성폭행이라는 타이틀에 갇혀서
잊고 지냈던 나를 찾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정신과 진료를 1년쯤 했을 때
나는 몸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니, 몸이 너무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다 아팠지만 가장 시급했던 건
소화불량이 너무 심해지고, 열도 나고, 기운도 없고, 구역감을 달고 살았다.
또,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이미 맹장수술을 한 지 10년이 넘었고 수술부위가 아팠다.
건드리지도 못하게 아파서 복부초음파, 복부 ct, 신장초음파, 위, 대장내시경 별 걸 1년 안에 다 해봤지만
오른쪽 아랫배의 통증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때 물고기 선생님은 답답해하는 나에게 혹시 산부인과를 가봤냐고 물어보셨다.
난소, 자궁 쪽 문제로도
해당 부위가 아플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간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나는 5cm 난소혹을 발견하고 자궁 물혹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당시 5cm의 혹이 좀 커서 수술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음 진료가 마침 정신과 진료와 겹쳐서 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진료 일정을 다시 잡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전화를 바꾸시더니
"제가 아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한분 계신데, 조심스럽지만 그 선생님께도 한번 진료를 보시고서
수술을 결정해 보셔도 좋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아직 결혼전이시고 (당시 결혼전이였다.) 나이도 젊으신데
수술보다는 최대한 난소를 보존하는 쪽으로 선택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내가 봐왔던 그간의 선생님과 다른 분위기의 통화였다.
그렇게 물고기 선생님의 소개로 나의 인생 산부인과를 찾아가게 되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그리고 한 사람과 여러 시간 동안 라포를 쌓아간다는 건 참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 사람과의 연결된 관계에서 또 다른 관계로 연결이 되었다.
집에 갇혀 사람과의 만남을 모두 차단하고 지내던 나에게 떨리고 반가운 연결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