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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의 초대

짧고 쉽게 쓰는 생각 #10

by 왈로비

코로나가 한창이던 4월의 어느 날,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에 있는 <뮤지엄 산>을 보기 위해 1박 2일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산 중턱에 위치한 그 높이만큼이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공간인 뮤지엄 산은 신비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아이는 따스한 햇살 속에서 다양한 조각품과 미술품, 건축물을 구경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선이 막혀 정지해 있다가 갑자기 깜빡이도 없이 시속 90km의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제 차 앞으로 끼어든 차로 인해 급정거를 하였고, 이로 인해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고 달려오던 뒤차가 제 차를 뒤에서 박았습니다. 갑자기 끼어든 차와 뒤에서 달려오는 차의 공동 불법행위로 인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도로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를 수습하며 더위를 참는 일도, 쌩쌩 지나가는 차 옆의 갓길에서 대기하는 일도, 이후 우리 가족은 여러 곳 멍이 들고 통증이 심할 정도로 다친 일도. 특히, 아이가 '우리 차 쿵하고 사고 났지'라고 생각날 때마다 말하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으면서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주었음에 몹시 힘들었습니다.


교통사고를 수습하고 치료를 받기 위해 회사를 일주일간 쉬었고, 교통사고 피해자로서 병원치료를 다니는 번거로움과 차를 수리하고 경찰과 보험사와 일처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상처의 아픔과 안 좋은 기억을 극복하는 일도 모두 우리 가족의 몫이었습니다.


교통사고가 없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연이어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스트레스와 부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약해졌고, 이내 면역이 저하된 상태에서 아이부터 시작하여 저와 아내 모두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2~3일간 39도의 고열과 물을 마실 때조차도 칼을 삼키는 듯한 목의 통증으로 심신이 지쳤습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코로나에서 간신히 회복한 이후 아이와 개울을 따라 산책을 하였습니다.


세 살 아이는 그날따라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돌다리를 건널 때 아빠가 손을 잡아주는 것이 싫다고 혼자 해보겠다고 하더니 이내 발을 헛디뎌서 개울가에 빠져서 신발과 바지가 몽땅 젖어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더니, 계단에 쌓인 낙엽을 가지고 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낙엽을 모아서 산처럼 쌓고 부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아뿔싸 잠깐 아이에게 눈을 뗀 사이에 아이가 그만 계단의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얼굴부터 떨어졌습니다. 너무 놀라서 아이를 들쳐 엎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얼굴에는 낙엽 부스러기가 묻어있고 계단으로 인해 상처가 났습니다. 그날 저녁 응급실로 갔으나, 코로나로 인해 진료를 못 받고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휴일에 진료하는 소아과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이의 얼굴에는 메디폼이 잔뜩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를 돌보지 못한 자책감과 아이가 평생 얼굴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면 어쩌나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이가 다치치 않았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사건으로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파괴된 삶에서 우리는 일상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럴때 우리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다름 아닌 "루틴"입니다.


2024년 여름, 배우 차인표가 2009년에 쓴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 한국학과의 교재로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나면서 큰 반향을 불러온 적이 있었습니다.


차인표라는 사람은 배우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많이 끼치면서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작가로서 이렇게 커다란 업적을 남길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차인표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작가로서의 성공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 어머니와 세 형제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차인표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습니다. 20대 어린 나이의 차인표와 지금의 차인표가 항상 행하는 3가지 습관이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작가로서 성공한 열쇠처럼 보였습니다.


읽기, 쓰기 그리고 운동하기

녹록지 않았던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그는 항상 식당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고 힘들었지만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팔 굽혀 펴기를 하면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멋진 몸은 이후 차인표라는 배우가 '원조몸짱'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인기 배우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대 늦게 미국에 이민을 가서 영어공부도 할 겸 차인표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잠을 자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자기 전 시간을 활용하여 독서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고른 책은 영어로 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습니다. 하루 2~3페이지를 약 6개월 간 꾸준히 읽으면서 마침내 1,500페이지 책의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차인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길고 유명한 책의 독서를 완성하면서 '자신도 꽤 괜찮고 수준 높은 독자의 반열에 올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독서에, 인생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차인표가 20대이던 시절에는 인터넷이 제한적이어서 지금과 같이 카톡이나 페이스타임 등을 통한 현재와 달리 미국과 한국의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아버지에게 연락하기 위해 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이후 편지를 쓸 필요가 없어졌을 때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인 일기를 꾸준히 썼고, 그 일기는 나를 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만의 역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내가 누군지 혼란스러울 때 과거에 쓴 일기를 보면 다시 나라는 사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훗날 읽고 쓰는 습관이 합쳐져서 차인표라는 작가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좋은 루틴'을 만드는 것.

그것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등산을 할 때 크레바스에 빠져도 다시 올라올 수 있도록 안전핀처럼 파괴된 삶에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작은 루틴이 꾸준히 쌓이면 처음에는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훗날 커다란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초기에 아주 작은 각도 차이로 있을 때는 옆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누적되어 계속 그 각도를 유지하며 걸어가다 보면 두 사람은 매우 멀어져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타인의 실수로 교통사고가 나고, 코로나에 걸리고, 아이가 다칠 때,

일상이 산산이 파괴되어 더 이상 하루를 살아갈 힘이 없을 때,

그럴 때일수록 루틴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루틴'은 일상으로 초대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루틴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회사에서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을 마치고,

퇴근 후에는 필라테스나 헬스 같은 운동을 하고,

자기 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 독서를 하며,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휘발되지 않도록 잘 기록하며, 가끔 저녁 시간에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유롭게 생각을 정리하고 심장박동을 느끼며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필라테스나 헬스를 하면서 코어와 근육을 강화하여 몸은 튼튼하게 하고,

독서를 함으로써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만나며 하루종일 번뇌했던 마음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글을 씀으로써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잘 정리하여 그 생각들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연히도 저의 루틴은 차인표의 것과 같은 '읽고 쓰고 운동하기'입니다.

감히 그와 비교되지 못할 만큼 저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식사와 같은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루틴을 통해 그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내재화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 있어 좋은 루틴을 만드는 것

그것은 의도치 않은 불행과 시련에서 인생을 지켜주는 것.

나아가 시간이 축적된 루틴은 산도 옮길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는 것.


부디 나만의 좋은 루틴을 만들어 일상의 안온함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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