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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자신이 부끄럽나요?

by Roo


누구나 흑역사는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기억하기 싫은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괴롭히는 기억들은 생각보다 많은 밤들을 지새우게 만든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 시간이 지나면 덤덤해진다. 그간 있었던 수많은 일들 덕분인지, 상대적으로 어린 시절의 미숙함이 당연하다고 느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밤잠을 못 이루게 만들지는 않는다.


직접 쓴 글을 종종 돌아보는 편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지난날의 기억과 감정을 조금 더 섬세하게 남기기 위해서였다. 감정에 휘둘려 작성한 글과 이성적인 판단하에 많은 수정을 거친 글들, 읽다 보면 글을 쓰기 위해 했던 생각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는 게 항상 좋지만은 않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 매번 좋은 감정을 남기고 온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 대로 의미가 있다.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글이 흑역사로 비칠 수 있지만, 지금의 내가 남겨온 모습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겨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나는 부정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일기에 쓰인 불편한 기억들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룡일이의 말처럼, 기록 자체에 의미를 두고 지나간 나의 모습을 오롯이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가끔 지인들의 글을 읽기 위해 떠돌아다닌다. 나처럼 글을 남겨두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심정의 변화가 생겼다거나, 자신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곱씹으며 써내려간 글들을 무심하게 지워간다.


살아가는 것은 현재의 나뿐이니 과거의 흔적들을 지워가는 것을 나쁘게 바라보진 않는다. 더군다나 혼자만 볼 수 있는 글이 아니라면 지난날의 이야기를 지워가는 게 이해하지 못할 행동은 아니다.


약간의 씁쓸함은 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간 많은 발전을 이뤄온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숙한 과거의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초라했던 지난날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믿고 있기에 그런 선택을 하길 바란다.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나 자신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아갈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더 행복해지기로 정했다면 평생 마주할 초라한 과거를 무던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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