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대가 독이 될 때

적당히 기대하고, 힘을 빼는 삶

by 연휴


돌아보면, 내가 실망감을 느낀 대부분의 순간들은 스스로 필요 이상의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실망했고, 그 뒤에는 자책이나 자기혐오가 따라왔다. 물론, 나는 기대 자체가 삶에 무익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대는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주며, 일상의 건강한 동력이 되어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삶은 우리를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문제는 그 기대가 과해질 때이다.


가령, 수험생활 시절 나는 매일매일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합격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매일의 원칙들을 세워두고, 스스로를 그 안으로 밀어넣었다. 문제는 합격에 대한 불안감에, 절대로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이상’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이 생기면,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기 바빴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설정해두고, 스스로 그 모습에 부합하기를 기대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는 수험생활 내내 나를 짐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나 자신을 계속해서 ‘저 평가’했다. 그러나 내가 가졌던 기대는, 사실 나를 지나치게 ‘고 평가’한 결과였다.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기에 죄책감 역시 커졌던 것이다. 수험생활 내내 나를 괴롭힌 자책감의 본질이 사실은 자만에 있었다는 점을, 내가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대가 과해지면 욕심이 된다. 우리는 삶의 많은 요소들을 통제하길 원하지만, 사실 그 요소들 중 대부분은 우리의 손 밖에서 결정된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은 타고난 것들에 의해, 운에 의해 정해진다. 우리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해냈다고 생각하는 목표와 업적들은 오직 나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말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삶의 수많은 장면들은, 사실은 단순히 그 기대가 과했기 때문이었던 것일 수 있다. 세상과 삶의 복잡다단함 앞에서 개인은 한 없이 무력해진다. 당연히 이루어져야만 하는 기대라는 것은 없다.


즉, 기대는 스스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정도의 의미에만 머물러야 한다. 기대가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어내게 되면, 그 목표에 미치지 못한 순간 자신을 향하는 화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유연한 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태도이다. 유연한 기대는 지금의 상태에 대한 ‘만족’을 전제로 한다.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 방향은 어디일지를 모색해가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지나치게 야망이 없다거나, 힘 빠지는 말 정도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적당하게 힘을 빼려는 노력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들은 기대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룰 수 있는지도, 이루면 좋은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기대를 위해 살고 싶지 않다. 대신 유연하게 기대하고, 적당하게 만족하고, 있는 힘껏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드시 그런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