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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맘 Oct 31. 2019

공무원 vs 공무직

관공서에서 일하면 다 공무원일까?

내가 근무했던 공보실은 직원이 열 명 남짓 되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두 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보통 서너 개 팀이 한 과를 이루는 것에 비해 정말이지 ‘가족적인’ 규모였다.


공보실 직원 가운데 삼분의 일 정도는 공무직, 즉 무기계약직이었다. 시청에 와서 알게 됐지만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다 공무원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공무원 아닌 직원들의 수가 생각보다 무척 많았다.


공무직은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행정 보조나 단순노무를 담당한다. 이를테면 청사 내 주차장의 요금 정산이나 안내센터 길 안내, 운전이나 시설관리 같은 일이다. 환경미화원이 대표적인 공무직 근로자다. 공무원은 때 되면 승진도 시켜줘야 하고 인사발령도 잦은데 공무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리를 옮기지 않아 한 자리에서 10년, 20년씩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공무원과 공무직의 역할이 항상 명확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다. 동사무소나 종합민원실에서 등본 떼어주는 직원은 공무원일 수도 있고 공무직일 수도 있다. 보통 신규공무원들이 민원대에서 등초본 발급 업무를 맡지만 단순반복적인 업무이다 보니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한 공무직 직원이 더 능숙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무실의 경우에는 사진 촬영을 담당하는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공무원 신분이고 한 사람은 공무직이었다. 업무 분장도 똑같고, 업무 능력상의 차이도 솔직히 없었다. 오히려 공무직이신 분이 연차가 낮고 나이가 어려서 일도 더 많이 했다.


심지어 예전에는 연설문 업무를 하는 공무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똑같은 연설문 업무인데 한 사람은 공무원 신분, 한 사람은 공무직 신분으로 일하고 있었던 거다. 그 직원은 시청을 그만둔 뒤 지금은 지역의 다른 기관에서 일반임기제 공무원 신분으로 연설문 업무를 맡고 있다. 충분히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실력인데 인사 제도상 공무직으로 일하고 있었던 거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데도 신분이 다른 이유는 뭘까? 굳이 공무원과 공무직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가장 큰 차이는 공직에 입문한 루트, 즉 공무원 시험 통과 유무다. 공무원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공시에 합격해야만 임용되는데, 공무직은 그에 비할 수 없이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채용된다. 과거에는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들어오거나 기간제에서 전환되는 경우가 많았고, 최근까지도 일부 지자체에서 공무직 채용비리가 말썽이 되면서 채용 과정의 공정성이 의심받기도 한다.


청춘을 바쳐 공부한 끝에 시험에 합격한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간단한 절차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공무직과 구분 짓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이 공무직에 비해 반드시 더 좋은 건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정년이 보장되니 비정규직도 아니고(오히려 임기제 공무원이 비정규직이라면 비정규직이다), 승진 개념은 없지만 호봉이 매년 오른다. 9급 때부터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에 비해 일은 편하고, 하는 일에 비해서 급여도 적지 않다.


공무직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으며, 공무직노조의 단체협약에 따라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다. 공무원의 복무에 대한 사항은 국가공무원법 혹은 지방공무원법에 규정돼 있다. 근로자가 아니니 근로자의 날에 쉬지 못하고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휴일수당, 야간수당도 받지 못한다. 공무원법으로는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아 시급 4천 원씩을 받고 비상근무나 당직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주52시간 근무제도 적용되지 않아 얼마든지 부려먹을 수 있다.


하지만 공무직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다. 주52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없다. 근로자의 날에 쉬는 것은 물론이고 휴일이나 야간에 근무할 경우 1.5배의 수당을 받는다. 비상근무, 당직 등 온갖 동원에서도 자유롭다. 하지만 각종 수당과 복지포인트, 성과상여금 등 복리후생은 공무원에 준하게 누리고, 특별휴가를 포함해 휴가일수도 공무원보다 더 많다. 공무직이 책임은 안 지고 각종 혜택만 누린다며 공무원들이 볼멘소리를 할 정도다.


실제로 공무직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시처럼 필기시험을 쳐서 공무직을 선발하기도 한다. 과목은 일반상식이나 한국사, 일반사회 등으로 난이도는 높지 않다. 이쯤 되면 준공무원이다.




진정한 워라밸을 추구한다면 공무원보다 공무직이 나을 수 있다. 비상근무와 당직에 시달리지 않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른다. 공무직이 공무원보다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커리어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성장하고 승진에 따라 더 큰 책임을 지기도 하는 공무원이 맞겠지만, 일적으로 큰 비전이 없고 소확행을 누리며 사는 걸 추구하는 타입이라면 이런저런 스트레스 없이 하던 일만 계속 하면 되는 공무직이 더 적합할 수 있다 본다.


그러나 아무래도 ‘2등 직원’이라는 느낌에 위화감이 들 수 있다는 건 극복하기 힘든 단점이다. 지금은 명칭도 듣기 좋게 공무직으로 바뀌고 각종 복리후생도 개선됐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행정시스템 아이디조차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이나 하는 직원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주기적으로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과 달리 한 사무실에서 오래 근무한 공무직이 사무실 돌아가는 사정도 더 잘 알고, 새로 발령받아 온 공무원에서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하는데 말이다.


공공기관 조직이 워낙 방대하고 하는 업무가 다양하다보니, 모든 업무에 있어서 늘 적합한 신분의 직원을 채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공무직이 해도 될 일을 공무원이 하고 있고, 공무원이 해야 될 일을 공무직이 떠맡고 있는 경우도 본다. 이건 누가 일을 더 잘하고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채용할 때부터 주어진 역할이 있으니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그게 조직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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