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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맘 Oct 31. 2019

공무원의 워라밸에 대하여 1

저녁이 있는 삶?

말이 나온 김에 지방공무원의 워라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공직에 입문한 신규공무원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잦은 초과근무다. 부서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일이 많은 부서는 일 때문에, 일이 없는 부서는 분위기 때문에 야근이 일상화돼 있다. 나만 해도 임용 첫 해에 일주일 평균 두 번씩은 야근을 했다. 주말에 나가 일한 적도 많았다.


평균 연령이 40~50대인 사무실에서 20대 신규 직원이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 하니 자연스레 업무가 나에게 집중됐다. 공직 사회는 일을 하든 안 하든 별다른 인센티브도 페널티도 없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기회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넘기고 빈둥거리려는 사람이 꼭 있다. 열정이 넘치는 신규공무원이었던 나는 시키는 대로 일을 했고, 일을 찾아서 했으며, 내 일이 아니라도 아낌없이 도왔다. 나중에는 자꾸 일을 떠넘기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방어적이 되긴 했지만, 일 욕심 많던 초반에는 자연스레 야근을 하게 됐다.


꼭 일이 있어야 야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일이 있든 없든 야근은 자연스러웠다. 6시가 되면 슬쩍 TV 앞으로 가 두세 시간 동안 야구 중계를 보다 집에 가시는 분도 있었고, 저녁 모임에 갔다가 느지막이 돌아와서 가방 챙겨 나가시는 분도 있었다. 심지어 팀원들에게 일을 다 떠넘기고 근무 시간 내내 개인적인 전화 통화와 외출로 바쁘던 팀장도 야근을 했다.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별 볼일 없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부인의 가게 일을 돕거나 아이를 봐야 하거나 달리 할 일이 없거나. 게다가 공짜 저녁밥을 먹고 초과근무수당도 받을 수 있었으니, 일이 없어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남아 있는 분위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바빠서 야근하는 다른 과 직원들이 억울해할 것 같다. 공무원 야근은 기관별로, 부서별로 편차가 크다. 확실한 건 칼퇴근을 기대하고 공직에 들어오면 후회하기 십상이라는 거다. 민원이 많은 부서에서는 하루 종일 전화 받느라고 정작 본 업무는 6시 이후에나 시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도 야근이 일상적이다 보니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가족의 날’로 지정해 초과근무수당을 인정하지 않고 정시퇴근을 장려할 정도다.


물론 일이 너무 많을 때는 가족의 날도 수당도 의미가 없다. 문화예술과처럼 행사가 많은 부서는 주말 출근이 잦다. 축제 준비 때문에 4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한 만큼 수당이 다 나오는 것도 아니다. 초과근무수당은 최대 하루 4시간, 월 57시간까지만 주어진다. 휴일에 8시간 이상 근무하면 수당을 받는 대신 평일 대체휴무를 쓸 수 있지만 실제로 쓰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야근이 많고 힘든 부서는 ‘격무부서’로 지정해 승진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격무부서가 인허가 관련 민원이 많은 건설과다. 여기는 말 그대로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월 57시간의 수당 시간은 의미가 없다. 일이 많기만 한 게 아니라 업무 난이도도 높다. 아무 것도 모르는 9급 공무원이 소송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이 많고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버텨지겠는데, 이런 부서일수록 까라면 까라는 식의 군대 문화가 심하다. 내가 알던 건설과 직원은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을 했다. 뾰족이 다른 길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좀 쉬다가 복직을 했는데, 미운털이 박혔는지 건설과 못지않게 고생하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내부 메신저로 안부를 물었더니 ‘하루하루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해서 마음이 짠했다.


각종 행사에 동원되며 개인 시간을 침해받는 일도 많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지역마다 열리는 도민체전 같은 행사를 관람하러 가는 이들이 누굴까 싶었다. 웬걸, 다 공무원들이었다.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솔직히 시시한) 지역 축제 같은 데에 동원돼서 가보면, 낯익은 얼굴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 이런 행사 동원의 경우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못한다. 말로는 ‘독려’니 ‘자율참석’이니 하지만, 과장님이 가자고 하시면 직원들 입장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안 갈 도리가 없다. 가면 내 황금 같은 주말이 아까워 속상하고, 안 가도 가시방석이다. 읍면동에 근무하면 사태는 더 심각해서, 주말마다 열리는 자생단체 행사에 동원되기 일쑤다.


전 직원 체육대회니, 부서별 단합행사니 하는 것도 꼭 주말에 한다. 사기업은 평일에 문을 닫고 워크숍을 하기도 하지만 공공기관은 민원 응대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야근보다 회식과 단합행사가 더 싫었다. 야근은 내가 맡은 업무의 연장이라 끝내고 나면 뿌듯하기도 하고, 적으나마 수당도 나온다. 그런데 수당도 못 받고 소중한 개인 시간을 소모하며 스트레스 받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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