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합행사만큼 싫은 게 당직과 비상근무였다. 당직은 몇 달에 한 번 꼴로 차례가 돌아오는데, 본청 직원들이 당직실에서 대기하며 전화 받고 청사 순찰을 도는 일이다. 남자 직원들은 숙직을 하고, 여자 직원들은 일직이라고 해서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수당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6만원이 나오는데, 당직 근무자는 청사를 벗어날 수 없어 점심도 배달음식으로 때워야 한다.
당직실로는 온갖 전화가 다 오는데 주말이라 처리가 힘든 일은 평일 해당 부서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인계하고, 급한 일은 담당자를 찾아 처리했다. 공사 소음이나 분진, 도로 적치물 같은 민원이 많았는데 해당 부서인 건설과나 건축과, 환경지도과 같은 곳은 주말에도 출근하는 직원이 많아 비교적 연락이 쉬웠다. 관할 읍면동으로 연락을 취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아주 귀찮고 피곤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읍면동 근무자의 경우 재택 당직이라고 해서 출근은 하지 않고 사무실 전화를 개인 번호로 착신 전환해 연락망을 유지한다.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니라 그건 그것대로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월말쯤 되면 다음 달 당직 근무자 명단이 나오는데, 미리 계획해 둔 주말 일정과 겹치지는 않을까 매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보다 몇 배 더 조마조마한 건 비상근무다. 태풍이나 폭설로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부서별로 현원의 10분의 1 혹은 5분의 1이 사무실에서 비상 대기하며 연락망을 유지해야 한다. 폭설로 길이 미끄러우면 출근을 하지 말라는 회사도 (드물게나마) 있는데 공무원은 비상근무나 안 걸리면 다행이다. 오히려 썼던 연가도 취소하고 사무실로 복귀할 판이었다.
토요일 저녁 폭설주의보로 비상근무명령이 떠서 사무실로 불려 들어간 적이 있다. 혼자 사무실을 지키면서 밤새 눈 구경을 실컷 했다. 푹 꺼진 사무실 소파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던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다. 일요일 오전 다음 근무자와 교대한 뒤 빙판길을 기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피곤에 절어 주말을 날리고 개운치 못한 상태로 출근하며 월요일 아침을 맞아야 했다.
한 번은 10월에 가을비가 억수로 쏟아져 호우 경보가 발효됐고, 비상근무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서에서는 내가 근무를 설 차례였다. 그 날은 하필 몇 주 전부터 잡아 놓은 내 결혼식 상견례 날이었다. 양가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남자친구와 내가 사는 지역이 교통이 더 편리했고, 양가 부모님께서 만남을 위해 먼 길을 내려오시게 되었다. 오후에 조퇴를 하고 상견례를 하기로 예정해 뒀는데 갑자기 비상근무라니. 비상근무명령이 떨어지면 합법적으로 연가 사용이 중지될 수도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흔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간(‘안 간’게 아니라 ‘못 간’ 게 확실했다) 서무는 심술궂게도 나 몰라라 했다(“네가 알아서 바꾸든지 해”). 평소 내 도움을 많이 받았던 같은 팀 주사님께 순서를 바꿔 달라 부탁했는데, 급한 사정을 뻔히 보면서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거절해서(고등학생 딸이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음? 평소에 주말마다 여행도 자주 다니시던데요?) 무진장 서운하고 서러웠다. 결국은 실장님까지 나서서 차례를 바꿔 주신 덕분에 무사히 상견례를 치르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또 비상근무명령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날씨 문제가 아니라 관공서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위 관련이어서, 문자를 받을 때까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필 나는 양가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연가를 쓰고 몇 시간 거리의 타지에 나가 있는 중이었다. 비상근무 순번은 사무실 내에서 자체적으로 정하는데, 내 상황을 뻔히 알면서 나를 비상근무자로 공지한 서무 담당, 매번 친한 척을 하며 내 도움을 받아 놓고서 꼭 필요할 때 모른 척 하는 주사님을 비롯해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었다. 비상근무에 시달리지 않는 공무직이고 싶었다.
전화해서 순서를 바꿔달라고 해봤자 지난번 같은 상황이 될 게 뻔해서, 아예 휴대폰을 끄고 잠수를 탔다. 결혼하고 처음 시가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 비상근무명령이라니, 그야말로 멘탈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예정대로 양가 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출근을 할 때까지도 휴대폰을 켜지 않았다. 며칠 동안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근했고,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했다. 나중에 휴대폰을 켜서 사무실 단톡방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서무 담당은 나를 근무자로공지해 놓았다. 전형적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타입의 서무 담당은, 내가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 본인만 사무실 내 유일한 미혼으로 남게 되자 티 나게 나를 괴롭혀 왔다. 사무실에서 본인보다 어리고 직급도 낮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만만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실장님 지시로 근무 순번이 조정됐고, 더욱 다행히도 전날 밤에 비상근무명령이 철회되어 결국은 아무도 근무를 서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사표를 냈다. 말로는 친목이니 단합이니 하면서 단합행사나 회식에 끌고 다니고, 평소에 특별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인정머리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화가 나고 지쳤던 것 같다.)
공무원에게는 워라밸이 없다. 다른 직장에 비해 업무량이 많다는 게 아니라, ‘워크’와 ‘라이프’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무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하고 제때 퇴근하면 좋으련만, 간부회의만 해도 오전 8시부터 열리고 6시 이후, 주말에도 끌려가야 하는 행사가 너무 많다. 주말에도 못 쉬었는데, 어차피 야근해야 하는데 싶은 보상심리가 생겨서 업무시간에는 오히려 딴 짓을 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사무실에서 면도 하고, 야구 보고, 휴대폰 게임 하면서 빈둥거리다가 수당 받아가며 야근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비단 공무원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보수적이고 방만한 조직일수록 잦은 초과근무, 비효율적 업무 관행은 고질병이다. 하지만 갑자기 떨어지는 당직명령, 비상근무명령의 스트레스는 공무원만이 알리라. 명절에 고향에 가려고 차표를 다 마련해뒀는데 당직이 걸리는 바람에 집에도 못 가고 우울한 추석을 보냈다는 공무원을 알고 있다. 명절에도, 어린이날에도, 연말에도 누군가는 휴일수당도 못 받고 당직근무를 서야 한다. 일과 생활의 분리, 균형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