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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맘 Nov 05. 2019

공무원 갑질? 시민이 갑질한다!

공무원도 사람입니다. 예의를 지켜 주세요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 공보실 박주사입니다.”


공무원은 시민에게 친절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벨이 3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늦게 받아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한다. 정기적으로 친절 교육, 친절 모니터링 평가도 받는다.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가 콜센터 상담원이라고 한다. 전화 상담원들의 고충에 대해서는 그동안 꽤 알려져 왔고, 사회적 공감대도 얻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콜센터 상담원만큼이나 고객 응대가 많고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 공무원이다.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사무실로 내방하는 민원인도 응대해야 한다. 등초본이나 증명서 발급 같은 단순 업무는 비교적 쉽게 끝나지만, 인허가와 같이 복잡한 사안의 경우 민원인과 실랑이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민원인 갑질’을 당하는 경우도 심심찮다.




직원 익명 게시판에 ‘민원인 갑질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내용인즉슨, 민원인이 법적으로 발급해줄 수 없는 서류 발급을 요구해서 정확한 규정과 합법적인 발급 방법을 안내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당신네들 규정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발급해 달라’며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와 폭언을 퍼부었다는 거였다.


참다못해 전화 내용을 녹취하겠다고 고지하자 민원인은 더욱 심하게 화를 내며 반말로 사과를 강요했는데, 결국은 사태 수습을 위해 몇 차례고 ‘죄송합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때 느껴지는 자괴감이란…….


민원부서의 직원들은 울리는 전화벨이 공포이며, 여직원들은 성적인 폭언까지 듣는 일도 다반사다. 게시글은 민원부서 내 CCTV 설치와 모든 전화를 녹취하는 시스템을 갖출 것을 건의하고 있었고, 동의와 공감을 표하는 댓글이 마구 달렸다.




요즘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보면 모든 통화가 녹취되고, 미리 안내 음성이 나온다. 고객이 폭언을 할 경우 상담원이 먼저 통화를 종료할 수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에 따른 근로자 보호 조치다.


하지만 공무원은 오히려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공무원들끼리는 자조적으로 우리가 ‘민원이 욕받이’라고 말한다. 행정안전부에서 만든 민원응대 매뉴얼이 있지만, 대부분의 일선 공무원들은 그 존재조차 모른다. 민원응대 교육이랍시고 가보면 악성 민원인 대처법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무조건 참으세요. 여러분 고과에 안 좋으니 맞서서 핏대 세우지 말고 잘 달래서 보내십시오. 무사히 정년 하셔야지요.”


이게 무슨 요령이고 교육인가 싶었다. 이런 게 공무원의 삶인가.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되고서도 조기에 퇴직하는 신규공무원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치열하게 공부했고 정당하게 임용되어 박봉 받고 일하는데 욕먹고 사과하면서 자존감은 깎여 간다. 또래 친구들에게 신세 한탄을 할라치면 ‘그래도 넌 킹갓무원이잖아’ ‘정년 보장돼서 좋겠네’라는 소리나 듣게 된다. 공무원에게는 공무원 나름의 고충이 있는 법인데, 모두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나라에서 공무원이 위로 받을 곳은 없다.




한 번씩 언론에 ‘공무원 갑질’ 이슈가 터진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 처먹는’ 공무원들의 오만방자함을 비난하며 입방아를 찧어댄다. 물론 공무원은 갑질을 하면 안 된다. 분명히 잘못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직자는 시민에게 성실히 봉사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시민은 공무원에게 갑질을 해도 되는 것일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난봉꾼으로 변해버리는 민원인에게 고이 멱살 잡힌 채 욕을 먹으며 무조건 사과하는 것이 공무원이 할 일인가?


올해 3월 계룡시에서는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에 참다못한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형사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경북 봉화에서는 민원 처리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쏜 엽총에 공무원 2명이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참고 링크: 중앙일보 기사 욕설·폭행·총까지 쏴···"공무원 상대 폭력, 도를 넘었다")


이렇듯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공무원은 항상 민원인의 폭력과 갑질에 노출되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주민의 표를 의식하는 민선 단체장도 공무원을 지켜주지 못한다. 계룡시 사건의 경우, 민원인을 고발한 주체는 계룡시가 아닌 계룡시 공무원 노조였다.


“규정상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 “너네가 언제 법대로 했냐!”고 생떼를 쓰고, 시장실 앞에까지 와서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이 있다. 시장까지 나와 대화를 시도하는데 듣지도 않고 제 할 말만 하며 막무가내다.


‘너네가 언제 법대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뿌리 깊은 행정 불신이다. 그건 공공기관의 오랜 적폐고, 국가가 시민에게 갚아나가야 할 빚이다. 그렇다고 해서 죄 없는 공무원 개개인에게, 특히 이제 갓 임용되어 법대로 잘 해보려고 하는 젊은 공무원에게 갑질하고 모욕하고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도 시민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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