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까
앞 글에서는 악성 민원인으로 인한 공무원의 고충을 다뤘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 다른 부류의 민원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일했던 공보실은 민원부서가 아니라 상시적인 민원전화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종종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개가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내 억울한 사연 좀 들어 봐라, 내가 아주 나쁜 놈한테 사기를 당했는데 이거 신문에 내서 널리널리 알려야 된다, 기자들 좀 불러 달라 등등등. “시장 목을 따 버리겠다”며 시청에 왔다가 마침 시장님이 부재중이자 그 옆에 있는 공보실로 찾아와 애꿎은 화풀이를 하고 가던 아저씨도 있었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고을의 원님을 찾아가던 전통 때문일까. 행정 처분에 대한 불만은 물론 개인적인 원한 관계에 대한 것까지 관공서를 찾아와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민원인이니까 이야기를 들어는 보는데 막상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자체로도 공무원은 할 몫을 한 것이다.
당장 해결은 안 되더라도 공무원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면 민원인은 한층 누그러진 마음을 갖고 공보실을 나선다. 그런 다음에 언론사에 제보를 했는지 다른 데 가서 깽판을 쳤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공무원으로서는 시민에게 봉사하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유석 판사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법정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억울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자기 억울한 사연을 끝도 없이 호소하는 원고인이 있었는데, 판사 입장에서는 끝까지 들어줘 봤자 어떻게 해결할 도리도 없는 경우가 많다. 들으나 마나 한 얘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날따라 뒤에 다른 재판도 없고 해서 그이의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듣고 있었는데, 원고인이 갑자기 판사석을 향해 넙죽 절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경찰, 검찰, 법원을 여러 번 들락거렸지만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은 판사님이 처음이라며, 가슴 속 한 맺힌 얘기를 판사다 다 들어주니 이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여한이 없겠다며, 정말 고맙다는 것이었다.(64)
그런데 항상 그렇게 아름다운 경청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인간의 인내심은 한정된 자원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공무원은 그 민원인이 아니라도 해야할 다른 업무가 산적해 있고, 민원인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길다. 결론도 없다.
한 번은 자기가 큰 사기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팀장님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수십 년 전 얘기부터 시작해 끝도 없이 사연을 읊어대는 통에 나자빠져 버렸다. 실장님이 나섰다가 역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도망가 버렸다. 아주머니는 기자실까지 가서 기자들을 붙들고 이야기했지만, 단신거리도 안 되는 신세한탄임을 간파한 기자들 역시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자 아주머니는 결국 엉엉 울면서 시청을 떠났다. 울음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며칠 후 지나가다가 보니까 시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노숙을 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돕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겁이 났다. 뒷감당을 할 자신도 없었다.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민원인이 이 아주머니만은 아니었다. 주말에 당직 근무를 설 때, 지적 장애를 가진 민원인을 맞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전화를 걸어와 지금 시청으로 갈 테니 버스노선도 책자를 좀 달라고 했다. 본래 주말에는 청사 출입이 안 되니까 평일에 오시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알겠다고 하고 찾아온 그에게 책자를 줬는데, 가지는 않고 또 다른 팸플릿을 달라고 하는 식으로 시간을 끄는 통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결국 당직반장님이 청원경찰을 불러 청사 밖으로 내보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별다른 용건도 없이 시청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이라고 했다.
공무원 개인의 입장에서, 끝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식의 막무가내 민원인은 영 상대하기 힘들다. 갑질하고 폭언을 하는 부류는 아니지만 이들을 상대하는 것도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나 역시 그 아주머니를 외면했고, 지적 장애 남성을 내보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들 골치 아프다며 모른 체 하는데 이제 갓 임용된 신규가 나서서 무얼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공공기관마저 외면한다면, 이들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만은 남았다. 사기업이라면 고객을 선택할 수 있다. ‘진상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봉사한다.
어떻게 보면 관공서란, 누구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