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를 가는 이유
얼마 전 영화의 가편 작업이 끝났다. 지금은 후반을 하는 동시에 영화를 제작하면서 알게 된 나의 강점과 단점을 정리하고 있다. 아직 완성을 하진 못했지만 정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작품도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영화제에 가서 직접 보고 오기로 했다.
국제 경쟁 3에는 총 6 작품이 포함된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순서대로 리뷰를 해보겠다.
1. 마지막 손님
Introduction
마흔 살의 택시 운전사 우사마는 야간 운행 중 마지못해 그날의 마지막 손님을 태우게 된다. 50세의 사랑스러운 조이스는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몇 군데 들르고 싶은 곳이 있다. 로테르담을 가로지르는 여정에 나서게 되는 두 사람은 이날 밤의 기억을 좀처럼 잊지 못할 것이다.
review
우사마는 설명에 쓰여있듯이 정말 마지못해 마지막 손님을 받게 된다. 실수로 잘못 눌러서 받아 버린 콜 때문에 억지로 우사마를 태우러 간다. 조이스가 택시에 타기 전에 커다란 캐리어를 혼자 낑낑대며 트렁크에 넣는 순간에도 우사마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백미러를 쳐다볼 뿐이다. 또 한 번 우마사는 마지못해 차에서 내려 조이스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대신 넣어준다. 이때 조이스가 고맙다고 말해도 듣는 둥 마는 등한 표정으로 다시 차에 올라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삶에 치여 웃음을 잃어버린 우마사가 조이스를 만나서 웃게 된다는 것이었다. 조이스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돌아본 자신의 삶을 옆에서 같이 지켜보며 간접 경험하는 느낌도 든다. 결국 우마사는 영화 초반에 자신의 이름을 물어보는 우마사에게 아무 이름이나 알려졌던 것을 정정한다. "나의 이름은 사실 우마사야."라고 말하자 조이스는 웃으면서 본인도 다른 이름을 알려줬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 영화를 국제 경쟁 3중에 가장 좋은 영화라고 뽑은 이유는 딱 하나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인물이 변화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단편영화에 담는 것은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포기를 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손님>은 나의 영화보다 더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국제 경쟁 3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은 영화로 뽑고 싶다.
2. 데이빗
Introduction
데이빗은 도움이 필요하다. 데이빗도 마찬가지다.
review
우울증을 겪고 있는 데이빗은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그때 의사의 아들인 데이빗이 레슬링 복장을 하고 진료실에 들어온다. 아들 데이빗은 자신의 레슬링 경기에 아빠가 왔으면 한다고 때를 쓰기 시작하는데, 아빠는 자신의 환자를 상담하는 시간에 아들의 경기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냥 한번 아들 경기 가면 안되나? 뭐 저렇게 까지 안된다고 할 일인가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우당탕탕 에피소드 느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한테는 별거 아닌 일이라고 할지라고 영화 속 캐릭터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결국 환자 데이빗과 아빠가 아들 데이빗의 레슬링 경기를 보러 가서 3초 만에 패배한 데이빗에게 박수를 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는 졌는데 저렇게 기립박수를 친다고? 할지 몰라도 앞의 상황을 본 사람이면, 데이빗의 패배에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이빗에겐 승패보다 아빠와 경기를 함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3. 얄라!
Introduction
1982년 베이루트. 끝없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고향을 떠날 준비를 하던 니콜라스는 수영장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철없는 십 대 소년과 마주친다. 그를 보호하기 위한 여정에서 니콜라스는 단지 수영장에 갈 자유를 위해 전쟁과 맞서는 초현실적 경주를 펼치게 된다.
review
어딘가에서 영화 연출과 애니메이션 영화 연출은 달라야 한다는 글을 봤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얄라!>를 보고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소년이 전쟁 속에서 수영장을 찾아가는 길에서 소년은 내내 수영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빨래가 널려있는 길거리를 주인공이 달려갈 때 그 앞으로 소년은 수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속이 아닌 곳을 수영하는 인물, 이것이 애니메이션 영화 연출의 좋은 예가 아닐까.
4. 테크노 마마
Introduction
테크노 음악을 사랑하는 니키타의 꿈은 베를린의 유명 클럽 “베르그 하인”에 가보는 것이다. 엄마 이레나는 이런 아들의 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결국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충돌하게 되는데....
review
블루 톤의 영화 속에서 파란색 옷을 입은 엄마와 대립하는 빨간색 옷을 입은 주인공. 줄곳 주어진 환경과 어울리지 못하던 주인공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 도망치고 나서야 낙엽이 물든 나무들 사이를 달린다.
5. 낯썬이들
Introduction
익명의 도시에서 한 사람이 의식을 잃은 듯 쓰러진다. 어떤 이들은 무심히 지나가고, 어떤 이들은 그녀를 보듬어 안는다. 홀로 친밀감을 찾아, 무관심한 이 세상에 눈이 멀어버린, 그녀의 시선과 몸이 휘청거린다. 그 몸짓은 우아하게 연출된 것이다.
6.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
Introduction
서른 살 맹난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러 고향에 돌아온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집을 떠났던 그녀는 계속해서 옛날이야기를 주고받는 친척들 틈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의 영혼이 되돌아오는데…
영화제에 가면 좋은 점은 평소에 볼 수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과 신선한 자극이 된다는 것이다. 영화가 좋았든 나빴든.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영화도 조만간 저런 기회가 찾아오길 하는 바람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