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터 Nov 29. 2023

6만원으로 수영장 전세낸 베트남 숙소

베트남 여행 중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 독학하기

호찌민에서 무이네로 가는 슬리핑 버스에 올라탔다. 표를 확인한 기사 아저씨는 승객에게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신발을 벗어서 노란 봉투에 담고 자리를 찾아갔다. 이름만 들어도 낭만 가득한 슬리핑 버스는 생각보다 더 비좁았다. 왼쪽, 중앙, 오른쪽 3곳으로 나뉜 좌석과 그 사이에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가방을 메고 앞으로 가다가 뒤 돌아보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 좌석, 그 아래 몸을 잔뜩 구겨야 들어갈 수 있는 일 층 좌석이 있었다. 어느 곳 하나 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위태롭게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좌석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1층을 예약해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의자가 40도 정도로 기울어져 있어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 상태로 흔들리는 버스의 움직임을 느끼며 무이네로 출발했다.


낭만 가득한 베트남 슬리핑 버스


무이네 시내에 도착한 버스는 호텔 앞에서 멈췄다. 나와 같은 호텔에 묵는 두 아저씨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무이네는 베트남에서 유명한 휴양지답게 도로 양쪽으로 수많은 리조트가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머물 곳은 1박에 6만 원 정도 하는 로터스 빌리지 리조트였다. 직원의 안내로 방을 배정받고 천천히 숙소를 둘러봤다. 이번 숙소를 예매한 건 테라스 때문이었다. 수영장가든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글을 써야지. 하지만 저 멀리 햇빛이 쏟아지는 수영장을 보니 다 내팽개치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나는 수영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슬리핑 버스가 익숙한 베트남 현지인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굶어서 일단 근처에서 밥을 먹고 왔다. 배가 든든히 채워졌으니 이제 글을 써야 할 시간이지만 자꾸 눈앞에서 수영장이 아른거렸다. 숙소에는 총 두 개의 수영장이 있었다. 하나는 로비 건물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 하나는 내 방 테라스에서 보이는 수영장.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은 좁은 데다 사람이 많았다. 어쩐 일인지 방에서 보이는 테라스는 넓은데도 수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리조트에 머무는 3박 4일 내내 프라이빗 수영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물과 수건을 챙겨서 수영장으로 나갔다. 선베드에 냅다 짐을 내려두고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달궈진 물은 미지근했다. 배 아래에 오는 물이 끝으로 갈수록 깊어져서 턱을 들지 않으면 코까지 차올랐다. 수위가 너무 깊지도 낮지도 않은 중앙 쪽에 자리를 잡았다. 자 이제 수영을 해야 하는데 냅다 수영장 벽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물속으로 얼굴을 넣었다. 이내 코로 미친 듯이 들어오는 물 때문에 컥컥거리며 간신히 물속에서 일어났다.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어떻게든 될지 알았는데, 방으로 돌아가서 씻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미 젖은 거 몇 번 더 시도하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왕초보 수영하는 법, 수영 독학하기 등으로 검색해 영상을 찾아봤다.


숙소에 있던 야자수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건 숨 쉬는 법이었다. 일단 물 밖에서는 입으로 숨을 쉬고 물속에서는 코로 내뱉기. 영상을 보며 어푸어푸 열심히 따라 했다. 다음 단계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새우처럼 만든 후에 물 위에 뜨는 거였는데 발을 떼는 게 무서웠다. 결국 이 동작은 포기하고 벽을 잡은 상태로 물장구치는 걸 연습했다. 잠시 후 손을 떼봤지만 아주 추한 모습으로 물을 왕창 먹은 뒤에 물 밖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벽을 잡고 몸을 일자로 물속에 띄우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벽 없이 넓은 수영장을 이리저리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수영장 벽에서 아주 찔끔 한 뼘 정도 떨어져서 물에 몸을 띄운 후에 발로 물장구를 쳤다. 그러자 바로 손 끝이 수영장 벽에 닿았다. 그렇게 조금씩 먼 거리에서 벽까지 헤엄쳐서 가는 것을 연습했다.


다음날 오후,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수영장 끝까지 헤엄쳐서 가고 싶었다. 벽이 근처에서만 끄적거리는 수영 말고, 수영장 중앙에서 냅다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다. 유튜브에 수영 멈추는 법을 검색했다. 그러자 신기하게 정말 멈추는 법을 중점적으로 알려주는 영상이 나왔다. 허우적거리면서 다리를 바닥에 닿게 하려고 하지 말고 몸을 접으면서 손과 팔로 물을 밀어내면서 일어나라고 했다. 벽 옆에 서서 자연스러운 동작이 될 때까지 연습했다. 벽과 2미터 떨어진 곳에 가서 수영하다 멈추고 물속에서 일어섰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힘입어서 수영하면서 숨 쉬는 법까지 연습하고 3시간이 지나서 녹초가 된 상태로 물속에서 나왔다.


3박 4일동안 거의 혼자 쓴 무이네 수영장


마지막 날, 해둔 게 있으니 이제 수영을 재미있게 즐길 일만 남았다. 수영장 끝으로 가는 걸 시도했지만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계속 물속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때마다 수영장 반대쪽 벽은 이미 내 손과 한 뼘 거리였고, 조금만 더 왔다면 닿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꼭 반대편까지 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끝까지 갈 수 있다. 만약 힘이 들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한텐 한 번에 저 끝까지 갈 힘이 정말 충분히 있다.” 결국 나는 수영장 끝까지 헤엄쳐 가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번 해내고 나니 돌아가기는 훨씬 더 쉬웠다. 한 번은 눈을 뜨고 벽을 바라보며 수영을 해보았으나, 어쩐지 더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포기했다. 목표가 보이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어쩌면 성공은 나아갈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을 믿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고작 수영하나 뿐이지만, 혼자 힘으로 익혔다는 것이 뿌듯했다. 3일 전 숨도 쉬지 못하던 내가 자유롭게 수영하는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빠른 시간에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계속된 노력과 스스로를 향한 믿음 덕분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여행 기간 내내 수영을 하느라 원래 계획했던 글쓰기를 하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성공 가능성을 배운 시간이었으니까.


이전 02화 5천 원짜리 베트남 숙소에서 생긴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