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 가지고 여행하는 이유
배낭여행 8년 차, 가방 무게를 줄이는 것에 능숙해졌다. 15kg으로 시작한 배낭의 무게는 해마다 줄어서 10kg이 되었지만, 작은 가방의 무게는 점점 늘어만 갔다. 영상 Pd이자, 아날로그 포토그래퍼이기에 여행을 갈 때마다 카메라 2개가 필수 옵션이었다. 하나는 비디오용 미러리스 카메라, 하나는 무겁기로 유명한 수동 필름 카메라였다. 비싸고 불편한 필름 카메라 대신 미러리스로 사진을 찍으면 되지 않냐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러면 카메라 한 대만 들고 다녀도 되니 족히 가방 무게가 2kg은 줄어들 터였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무게를 견디고서라도 필름 카메라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꾸역꾸역 두 카메라의 무게를 견디며 여행을 다니다가 문제가 생겼다.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실험하러 떠난 베트남 여행에서 장비가 하나 추가 된 것이었다. 그건 노트북이었다.
맥북 프로의 무게는 2kg 정도이니, 가지고 있는 장비의 무게만 해도 6킬로가 넘었다. 그럼,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여도 총 16kg이었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으니, 배낭을 등에 메고 장비 가방을 앞으로 메고 여행을 떠날 작정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현관문을 나설 수 없었다. 이 무게로 공항은 어떻게 간다 치더라도 현지에서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가방을 열어 수동 필름 카메라 캐논 AE-1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렸다. 그렇게 필름 사진을 포기하려 했지만, 배낭 깊은 곳에 넣어둔 필름이 떠올랐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짐을 가장 처음에 넣었으니, 필름을 꺼내려면 모든 짐을 꺼내야 했다. 결국 아주 오래전, 황학동 풍물시장에서 구매한 자동 필름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풍물 시장에서 구매한 필름 카메라 올림푸스 뮤2는 고작 3만 원이었다. 작동이 편하고 가벼워서 필름 사진 입문자에게 인기 있는 모델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구해 신이 났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한참 잘 사용하던 뮤2는 어느 순간 잔고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렌즈가 갑자기 들어가거나 한 컷밖에 찍지 않은 필름을 냅다 감아버린다거나 하는 오작동이었다. 자동 필름 카메라는 건전지로 작동이 되는 만큼 접지가 약해지거나 하는 문제로 잔고장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고쳐서 사용한다고 해도 비슷한 문제로 또 고장 나는 경우가 많아서 수리를 포기하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카메라였다. 저렴하게 구한 카메라니 만약 여행 중에 작동하지 않으면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필름을 뮤2에 장착했다. 한국에서 건전지를 바꾼 덕인지 다행히 촬영이 안 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오래 사용하지 않은 카메라인 만큼 결과물이 걱정되었다. 몇 년 전부터 한 필름 브랜드의 공장이 문을 닫고, 필름 사진을 찍는 유행이 생기면서 필름 값은 미친 듯이 치솟은 상태였다. 3천 원이면 사던 필름이 만원을 넘었으니 한 컷 찍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아무리 찾아도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해 주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잘 찍혔을 거라 믿고 사진을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주가 넘는 베트남 여행이 끝났다. 필름 사진의 결과물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필름 스캔을 하러 갔다. 6롤이 넘는 필름이 최악의 상황에는 한 장도 찍히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돈을 더 내고 당일에 스캔해 주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사진의 결과물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자동 필름 카메라로 찍은 줄 모를 정도로 잘 찍힌 사진도 많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대부분 욕심을 많이 부린 사진이었다. 저 멀리에 있는 피사체를 찍으려 줌을 최대한 당겨서 찍은 사진이 가벼운 카메라 무게 탓에 흔들린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사진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심지어 가벼운 무게 덕에 평소보다 더 많이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어서 더 다양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당장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어서 불안하지만, 나중에 의외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필름 카메라. 누군가에겐 너무나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사진을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