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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Dec 02. 2023

여행자 보험 없이 베트남 가면 안 되는 이유

달랏 여행 중에 생긴 오토바이 사고

달랏 여행 첫날, 호스텔 8인실을 혼자 쓴 터라 아침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테라스로 나갔다. 이른 아침부터 뚝딱거리던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더 크게 귀에 맴돌았다. 숙소 후기에 앞 건물이 공사 중이라 시끄럽다는 글이 많았는데 그것 때문에 손님이 없는 건가 생각했다. 카메라 렌즈를 공사장 쪽으로 고정했다. 얼마쯤 기다렸을지 베트남 전통모자 논리(non la)를 쓴 인부가 뷰파인더 안에 들어왔다. 셔터를 누르고 다른 인부가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고산지대 특유의 선선한 날씨 덕에 밖에서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힘들지 않았다. 공사 소리 덕에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방도 혼자 쓰고,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의 시작은 없을 듯싶었다. 아침을 먹고 호수를 산책하고 카페에 다녀왔을 때까지만 해도 달랏은 인생 여행지로 남을 거로 생각했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숙소 앞 건물 공사하던 장면


카페에서 구상 중인 글의 목차를 완성했다. 뿌듯한 마음에 남은 시간은 근처 대형 마트에 가서 쇼핑할 작정이었다. 카페에서 마트까지는 도보 5분 정도 그 짧은 길 사이에서 사고가 나버렸다. 회전교차로 앞에서 보행자 신호를 받고 도로 발을 내디뎠다. 베트남 도로에 몇 없는 신호등이라 반가운 마음에 냅다 걸음을 옮긴 게 문제였다. 몇 발짝을 디뎠을까 왼쪽에서 오토바이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도로를 꽉 채울 정도의 오토바이 때가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저 반대편으로 건너갈 시간이 없었다. 그때 한 오토바이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직감했다.


“와 나 지금 사고당한다.”


오토바이는 나의 오른쪽 다리를 맞고 쓰러졌다. 오토바이를 막으려 뻗었던 오른손 손가락이 꺾여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픈 건 둘째로 치고 너무나 두려웠다. 또 미친 듯이 화가 났다. 도대체 왜 보행자 신호에 달려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대편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소리쳤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나를 친 운전자를 나무라는 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나를 친 운전자는 불쌍한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일으키곤 왼쪽 뺨과 다리에 난 상처를 보여줬다. 그러곤 가라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그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사고를 낸 사람이 누군데 본인에게 더 큰 상처가 났으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할 수 있는 걸까. 너무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문제는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영어로 화를 내봐도 운전자 아저씨는 그래봤자 이해하지 못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결국 오토바이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고 전화번호를 받고는 아저씨는 보내줬다.


달랏의 호수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가면 꼭 여행자 보험을 들었지만, 이번 여행은 급하게 오느라 여행자 보험이 없는 상태였다. 하필 왜 보험도 없는 지금 사고가 났을까 속상하고 억울했다. 사고가 나면 그냥 이렇게 끝인 건가, 허망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현실은 더 암담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베트남에서는 사고가 나면 그냥 서로 괜찮으면 갈 길을 간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사건이라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50만 동을 주면 끝난다고 했다. 50만 동은 한국 돈으로 2만 5천 원 정도니, 한국에 돌아가 치료를 받기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오토바이에 부딪힌 오른쪽 몸이 아려왔지만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발목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금방 아물 정도였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안심해 보려고 해도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았다. 


사고당했던 교차로 근처


혼자 속상한 마음에 울기 일보 직전, 숙소에 다른 게스트가 들어왔다. 커다란 캐리어를 풀고 내부를 둘러보는 여자분께 물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네 맞아요.”


코로나 전에 하노이에서 가이드를 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여행 기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지역 등에 얘기하다 오늘 있었던 사고에 대해 털어놨다. 나와 같은 문화를 살아온, 같은 언어를 사용해 대화가 어렵지 않은 사람에게 한참 신세 한탄을 하니 잠시 마음이 괜찮아졌다. 그분은 나의 상황에 공감과 다정함을 아끼지 않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달랏의 호수


그렇게 침대에 누워 그 말을 되뇌었다. 다행. 당장의 마음은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다음날부터 여행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막막했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럼 난 어떻게 길을 건너야 하지. 두려움에 안정되었던 마음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베트남 길 건너기, 오토바이 사고, 등을 검색했다. 그러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방송인 노홍철이 사고당하는 기사를 봤다. 베트남으로 오토바이 여행 중에 엄청 심하게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영상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엄청 심하게 다친 그는 바닥이 흥건할 정도로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다.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은 그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말했다.


“기승전결이 있는 여행 너무 좋아. 나는야 럭키가이.”


순간 저렇게 다쳤는데도 웃고 있다니, 심지어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니 너무나 놀랐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과거에 있었던 일에 매몰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걱정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사건이 났던 건 과거고 길을 어떻게 건널지 혹은 또 같은 사고가 생길 것 같은 걱정은 미래의 일이었다. 현재의 나는 너무나 안전하게 숙소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자 누구도 위로해 주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큰 사고에도 웃을 수 있었던 노홍철처럼 생각했다. 사고를 당하고도 택시를 타고 안전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또 숙소에서 만난 한국분에게 위로받을 수 있었으니 나는 너무나 행운아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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