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 장기 숙소를 고르는 법
해외 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어떨까? 집이 아닌 곳에서 월 단위로 머물면서 여행한 경험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제주도 협재 해수욕장 근처였고, 한 번은 제주도 표선에서 였다. 협재에서는 20대 초반에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면서 지냈고, 표선의 숙소도 역시 게스트하우스였다. 한 방을 다른 사람이랑 같이 쓰지만 각자의 침대를 갖는 도미토리의 특성상 가격은 저렴할지 몰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현저히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기에 첫 해외 한 달 살기는 개인실을 예약해야겠다는 결심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과 만날 기회가 적은 숙소라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한 지역에 한 달이나 머물면 하루의 일상이 너무 단조롭지는 않을까 많은 고민마저 들었다. 하지만 한 달 넘게 해외여행을 하며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는 경험은 더러 해봤기에 새로운 형태의 여행이 너무나 궁금했다. 정말 심심할 지 아니면 의외로 너무나 재미있을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직접 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첫 해외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은 도시는 치앙마이였다. 하지만 태국 치앙마이의 2월에서 5월까지는 화전 기간으로 전 세계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했다. 현지인들도 외출을 자제하는 시기이며, 하늘을 뒤덮은 뿌연 미세먼지는 어떠한 풍경도 다 가려버린다고. 하는 수 없이 태국과 육로로 이동이 가능한 나라 중에 가본 적이 없던 말레이시아를 골랐다. 관광 정책으로 태국 정부에서 화전 단속을 한다기에 여차하면 기차를 타고 치앙마이로 떠날 수 있는 쿠알라룸푸르로 첫 한 달 살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쿠알라룸푸르로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니 이제 숙소를 잡는 일만 남았다.
장기로 숙소를 예약할 때의 장점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5만 원 하는 숙소가 장기로 예약할 경우 2만 원대까지 내려가곤 했다. 문제는 그만큼 리스크도 올라갔다. 장기로 예약한 숙소의 상태가 나쁘면 여행하는 기간 내내 인내하며 지내야 했다. 그렇기에 숙박 사이트를 열심히 뒤져가며 두 곳을 후보에 올렸다. 한 곳은 쿠알라룸푸르의 중심지이자 관광지가 몰려있는 KLCC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곳이었다. 한 달 비용은 110만 원 정도로 방 하나에 거실이 딸린 숙소였다. 서울의 자취방보다 넓고 쾌적해 보이는 사진에 마음이 이 숙소로 잔뜩 기울었다. 하지만 건물이 너무 낡았고, 때때로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고, 수영장을 사용하려면 예약해야 하는데 그마저 사람이 너무 많다는 후기가 있었다. 나머지 한 곳은 60만 원 후반 가격으로 침대 하나와 욕실이 딸린 작은 원룸 형태의 숙소였다. 방은 작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위치도 중심지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숙소의 장점은 건물이 깨끗하고 숙소 바로 앞에 커다란 공원이 있고, 장기로 묵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온수 풀장, 자쿠지, 노래방, 영화관, 부엌이 있었다. 심지어 모든 투숙객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코워크 스페이스, 야외 풀장과 지하에 한식, 중식, 현지 음식을 파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결국 여행할 때는 좀 불편하더라도 장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경비를 줄이자는 생각으로 두 번째 숙소(Komune Living & Wellness)를 골랐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을 찾아봤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공항철도가 잘 되어있었지만, 중심지에서 숙소까지 가려면 3번이나 지하철을 갈아타야했다. 캐리어를 가득 채운 한 달간 생필품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결국 그랩을 불렀다. 숙소가 중심지에 있지 않으니, 시작부터 불편하구나. 숙소까지 가느라 2만 원 가까이 지급해야 하는 그랩 비용을 보며 이렇게 한 달 동안 교통비를 쓴다면 중심지에 숙소를 잡는 게 더 절약하는 길이 아닐까 두려웠다. 숙소에 체크인한 뒤 짐을 짐을 방에 내려두고 사진으로 본 여러 시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라운지, 헬스장, 야외 헬스장, 자쿠지 등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층마다 수시로 관리하는 직원들이 계속 상주해 있어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첫날은 피곤해 일찍 잠들었기에 두 번째 날 이른 시간 일어나 공원으로 나갔다. 공원 중앙에 아주 큰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를 빙 둘러 러닝을 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있었다. 그 길을 달리는 사람부터 곳곳에 자리를 잡고 요가와 스트레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에서 건강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나의 한 달도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갈 거라는 예상이 들었다. 그렇게 쿠알라룸푸르에서의 한 달 살기가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