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 중에 들개를 만났을 때 살아남는 법
해외여행 중에 들개 7마리를 마주쳤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그건 바로 뒤돌아 걸어가는 것. 개들에게 등을 보이고 한 걸음 떼는 순간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단단히 잘못된 행동을 했고, 불행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내가 겪었던 바로 그날처럼 말이다.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중에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물가도 알아볼 겸 숙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마트로 버스를 타고 갔다. 라면, 콜라, 치즈, 빵 등 숙소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한가득 샀으니, 누구보다 풍족한 만족감에 사로잡혀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먹고 싶었던 인도 커리까지 저녁으로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으나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다. 소화를 시킬 겸 걷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소 건물이 보일 정도로 숙소와 가까워졌다. 이제 길만 건너서 저 코너만 돌면 첫 동네 산책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도로 위에 끊이질 않는 차들이었다. 베트남 여행 중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후로 길을 건너는 건 여행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더구나 말레이시아에서 보행자 신호를 찾아보긴 어렵고 차가 오지 않을 때 눈치껏 건너야 했다. 한참이나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는 순간은 없었다. 길을 어떻게 건너야 하나 막막하게 도로를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대형 개 두 마리가 빠른 속도로 차 길을 가로 건넜다. 아주 순식간이었고, 두 마리 모두 무사히 건너편 길에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빨리 용감하게 길을 건너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내가 있던 길 끝에 그러니까 그 두 마리의 개가 출발했던 길 위에 들개 무리가 있었다. 어림잡아도 10마리 가까이 되는 거대 집단이었다. 아주 짧은 그 순간에 무리 중 한 개와 눈이 마주쳤고 본능적으로 더 가까이 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개가 나를 향해 한번 ‘컹’하고 짖었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원래 그쪽으로 가려던 계획이 없었던 듯 뒤로 돌았다. 그러자 그 개는 숨도 쉬지 않고 여러 번 짓기 시작했고, 달려오는 발소리, 화음을 맞추듯 정신 사납게 짖어대는 다른 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뛰어볼지 잠깐 고민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개들의 소리에 내가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체감 3걸음도 채 걷지 않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개들이 맘만 먹으면 내 다리를 확 물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와있었다. 순식간에 내 주위를 빙 둘러 들개들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들개들은 아주 흥분한 상태로 동시에 나에게 짖기 시작했다. 가려던 길을 갈 수도 다시 돌아서 갈 수도 없었다. 이제 여기서 무사히 나갈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싸우는 것. 싸워서 이겨야 온전한 다리로 걸어서 집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명 저 개들은 족히 10마리 정도 되어 보이는데, 확실히 내가 불리했다. 더구나 나에겐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었다. (인간 중에서도 이가 아주 작은 편에 속함)결국 나는 결단을 내버렸다.
손에 쥐고 있던 계란을 개들에게 던졌다. 던지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계란은 너무나 약해 저 개들의 신체 부위 중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아주 작고 말랑한 코로 스치기만해도 깨져버릴 테니까 계란으로는 개들에게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손에 쥐고 있던 계란을 던졌으니 필요하다면 가방에 들어있던 콜라, 라면, 잼 같은 것들도 던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계란의 위력은 강력했다. 계란 6구가 들어가는 플라스틱 용기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자, 입구가 열렸다. 그 순간 내부에서 계란 6알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계란이 깨졌고 안에 들어있던 흰자와 노른자가 폭탄처럼 바닥과 개들의 다리에 튀었다. 마치 이중 폭탄 같은 모습에 나도 개들도 놀라서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순간 졸아버린 개들의 꼬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나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렇게 당황하지 않은 척, 혼자서도 개들 따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듯 당당한 발걸음으로 뒤를 돌았다. 하지만 나와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개 두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서 당황한다거나 망설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은 척 가던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렇게 나의 아침 식사로 먹으려고 했던 단백질(계란)을 바치고 나의 단백질(다리)을 지킬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물로 항상 개를 뽑아왔던 내가 이렇게 위협을 당하다니 슬픈 마음이 들었다. 횡단보도 공포증에 이어 들개 트라우마까지 해외여행을 하기 더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치지 않고 숙소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에 감사하고 잠을 청했다.
들개 때문에 여행을 멈출 수 없으니 들개 출몰할 것 같은 도시에선 주머니에 짱돌을 넣어두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부디 나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들개들과 마주한다면 절대 등을 보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무엇이라도 던지시길. 있는 힘껏. 기필코 안전하게 여행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