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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Apr 24. 2024

말레이시아에서 태국어로 신년운세를 보다

태국 친구와 함께 말레이시아 말라카 여행

쿠알라룸푸르 한 달 살기 중 가장 큰 도전은 말라카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것이었다. 말라카는 쿠알라룸푸르와 아주 가까운 도시로 말라카로 가는 버스가 30분에 한 번씩 있을 정도로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이동이 잦은 도시였다. 그렇기에 말라카로 가는 여행이 무슨 그렇게 도전씩이나 되는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라는 게 나의 도전 중 하나였다. 심지어 동행인이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태국 친구라는 점. 미국 유학을 한 그 친구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쉽게 사용하지만, 나는 영어 실력이 서툴다는 게 문제였다. 일정이 맞을 때 함께 쿠알라룸푸르 내에 있는 여행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아도 1박 2일간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럼 같은 숙소를 써야 하니 24시간을 빼곡히 함께 보낸다는 것이었는데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한 피로도는 올라갈 터였다. 



말라카를 함께 여행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제안에 평소 가고 싶었던 여행지라는 이유만으로 덜컥 좋다고 답해버렸다. 약속 시간과 일정까지 다 잡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제 와서 못 가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국어였다면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만, 영어로 적당히 둘러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나 말라카까지 도착해 중심부로 이동했다. 말라카의 유명한 관광지인 네덜란드 광장의 이국적인 건물을 구경하고 그 건물 근처로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친구가 나와 비슷한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강물에 비친 햇빛이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반짝였고, 미처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형형색색의 건물색이 그대로 강물에 비쳐있었다. 강물을 가로질러 타는 작은 보트를 탄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강 건너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또 그 길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식당들은 테이블이 모두 야외로 나와 있었다. 강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서빙을 하는 직원까지 마치 짜인 극본대로 움직이는 영화 속 배우 같았다.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어딘가 어색한 구석도 없이 모두 자연스러웠다. 영어에 대한 걱정은 온데간데없어졌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숙소에 들어가서 잠시 쉬다가 밥을 먹으러 오후에 봤던 강 근처 식당으로 갔다.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더 이상 강물은 반짝이지 않았지만, 그 빈 자리를 강 위에 달린 조명이 대신하고 있었다.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도 옅은 빛을 내는 작은 조명들이 켜져 있었고, 컴컴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화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야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는 똠얌꿍을 친구는 말레이시아식 볶음면을 주문했다. 똠얌꿍에 면이 들어가 있냐는 나의 물음에 직원은 원래는 안 들어가지만, 원하면면 넣어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때 친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국에서는 보통 똠얌꿍을 밥이랑 먹는다며 국수를 넣는 건 특이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라서 각기 다른 문화 속에 살았고 그 두 명이 모여서 서로에게 낯선 곳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똠얌꿍을 먹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장기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 주변에서 건네는 우려의 말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를 오래 다녀야 한다. 여행은 사치이고 돈을 모아야 한다. 또 마땅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차림새를 갖춰야 한다는 말들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면 괜히 조바심이 난다는 말에 서로 공감했다. 이렇게 여행에 온 순간만큼은 그 누구의 시선도 상관없이 오롯이 나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만큼은 우리가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상관없고, 차와 집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으며 우리는 각자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내일도 이 옷을 입을 거라며 웃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들기 전에 친구가 물었다. "혹시 운세 보는 거 좋아해?” 나는 침대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던 몸을 바로 세우며 답했다. “좋아하지! 한국에서는 사주라고 하는 게 있거든. 난 거의 사주 중독자야.” 그러자 친구가 태국에 유명한 역술인이 있는데 이 사람이 매년 초에 일반적인 운세 풀이를 인터넷에 올린다고 했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나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말했는데 거기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 친구와 나는 동갑이면서 생일도 며칠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서로 신기해하며 저녁 식사를 할 때 나누었던 이야기. 30대에 막 들어선 사람들에게 여행보다 일, 결혼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 공감했던 것이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지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구가 봐준 운세에서는 다행히 2-3년 안에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며 성공한 삶의 문턱 앞에 서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한국에는 사주란 게 있다며 5행이 있는데 이걸로 본인한테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다고 친구에게 알려줬다. 그렇게 친구는 태국 사이트에서 나의 사주를 나는 한국 앱으로 그 친구의 사주를 서로 봐주기로 했다. 그러다 태국과 한국이 사용하는 말은 다르지만, 공무원, 의사 등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선망이 얼마나 큰지 또 성공을 하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가 얼마중요시되는지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좋은 기회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후로 삶이 완전히 바뀌었고 어린 시절 꿈꿔왔던 그리고 그렇게 소망하길 사회가 만들었던 의사의 길과 멀어졌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 이국적인 도시, 말레이시아이지만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흔적이 남아있는 말라카에서 국적이 다른 우리가 비슷한 걱정과 삶의 고민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 모습과 문화로 살아가지만 결국 삶의 근원에 있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30대가 되어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노후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도 매일 같은 옷을 입으며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결국엔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 다른 언어를 쓰고 생김새가 다르더라도 함께 여행하며 비슷한 고민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내가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을 꺼렸던 것처럼 작은 걸림돌은 인생에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어 그 돌을 넘어버리면 말라카에서 친구와 함께 서로의 언어로 신년운세를 봐주었던 것처럼 상상치도 못하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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