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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3. 2019

어느 멋진 하루 (1)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알람이 필요없는 아침. 그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치앙마이의 아침은 눈이 떠지는 순간부터 시작다. 충분히 자고 눈을 떴을 때 고요한 방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도미토리의 다른 게스트들은 이미 단장을 하고 방을 떠났다. 핸드폰으로 간밤의 소식을 확인하고 샤워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도미토리 내부에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샤워는 언제나 냉수로. 차가운 물을 머리에 부으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볼까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몇몇은 한 달을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되물었다.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질문에 답하려니 자꾸만 말이 길어졌다. 이렇게 보내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이러저러한 것을 해보려구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목표를 가지고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왜? 목표가 의미를 대신하진 않는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대해서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왜 내가 떠나고 싶었는가를 생각하면 할수록 특별한 목표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내가 한 달의 방학을 보낸다면 어떤 것을 할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나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열 권의 책과 다섯 편의 영화만 챙겼다.


그러니까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는 특별할 것이 없다. 일어났으니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면 된다. 첫 끼는 보통 숙소와 가까운 곳에서. 구글맵으로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보고 때로는 어제 발견한 식당에 가보기로 한다.



시크한 고양이 우완이 놀러온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가끔 온다더니 이 날 이후로 오지 않고.
I Hate Monday 라고 적힌 에코백. 보자마자 이거다! 싶어서 샀는데 튼튼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멘트가 찰떡.


읽을거리와 노트를 챙겨 1층으로 내려온다. 밥을 먹고 돌아와 4층까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할 필요가 없도록. 1층 공용 공간은 적당히 경쾌하고 적당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이미 책을 읽고 있는 게스트가 있다. 그 날의 스탭과 인사를 나눈다. 헬로, 또는 사와디-카. 어디 가니? 그냥, 밥 먹고 돌아오려고.


짤랑-짤랑-


이야기를 하는 사이 아이스크림 트럭 소리가 들리면 일단 달려나간다. 아이스크림은 밥을 먹기 전에 먹어도 맛있으니까. 코코넛 또는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작은 스쿱으로 한가득 담아주는데 중간에 잊지 않고 쌀밥도 넣어준다. 아이스크림과 밥이라니? 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스티키 라이스를 감싸면 평소보다 단단한 식감의 젤리 같은 맛이 난다.


아이스크림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새 스탭도 내 뒤에 섰다. 헤헤. 이 맛 알지, 알지. 해맑은 미소를 나눈 뒤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다. 1시에서 2시로 넘어갈 무렵, 거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한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식당 중에서 특히 두 곳, 타이음식을 맛있게 하는 Mama's Restaurant과 베트남 음식 전문점 Dara Restaurant 세 번 이상 방문했다. Mama's Restaurant 12평 정도 될까 싶은 공간에 테이블은 3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식당이다. 그곳의 주인이자 유일한 셰프인 마마는 한국어로 '최고'라고 적힌 캡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영어나 한국어는 하나도 통하지 않지만 사진이 있는 메뉴와 손가락만 있다면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양한 메뉴를 먹어봤는데 그중에서도 베스트는 팟타이. 케첩 베이스의 달콤한 맛이 은은하게 입 안에 감도는데 유치하지 않고 맛있다.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과하지 않고 은은해서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는 맛.


왼쪽부터 순서대로 팟씨유(팟타이보다 넓은 면으로 만든 볶음국수), 팟 카 파오 무쌉(바질과 돼지고기를 넣고 볶은 덮밥), 닭국수.
단연 베스트였던 팟타이



Dara Restaurant은 양념과 간이 센 타이음식에 지쳤을 때, 깨끗한 맛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갔다. 메뉴판이 엄청나게 두꺼운 데 비해 의외로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특히 베트남 요리의 기본인 쌀국수가 없다)이 조금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 본 메뉴 중에 실패한 것이 없었다. 베스트 메뉴는 DIY 세트. 몇 가지 채소와 다진 고기를 알아서 싸 먹으면 된다. 향이 강한 채소도 가리지 않아서 한가득 내어주는 식물의 이파리를 이것저것 넣어서 소스에 푸욱 찍어먹으면 정말 맛있다. 땅콩 버터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스가 별미. 느낌은 쌈장과 비슷한데 됨직하면서 달큰한 향이 중독적이다.



야외석은 말그대로 자연과 어우러진 곳이다. DIY 세트는 오른쪽 사진처럼 한 상 차림이 나온다.
보이는 모든 것을 넣어서 한 쌈 가득 싸먹으면 묘하지만 확실한 꿀맛!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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