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 1
어느 순간부터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이 마치 바닷물 속에 머리를 넣은 채 숨을 쉬려고 노력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적잖이 당황했다. 언젠가 오래전에 마치 내 두 손으로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아름다운 무언가를 탄생시켰던 것을 기억은 하는데, 더 이상 그 마술을 쓸 수 없는 기분이었다. 모국어의 은유가 가진 질감은 마치 피부에 가시가 박힌 듯 까끌했고, 은유가 품은 심상은 쉽게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내가 써내는 문장은 급했고, 평이했다. 고르고 느린 듯한 숨, 내가 쉬고 싶은 그런 호흡이 아니라, 급하고, 얕고, 여유가 없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박한 언어적 상상력과 어휘력이 주는 조급함이 만들어낸 결론이었을 것이다. 글을 느끼고 즐기기보다, 익사하기 바로 직전 발버둥 치듯이 무엇이라도 잡히는 대로 끌어올려 문장을 지어냈다. 고통스러웠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기계적이었고, 한 문장을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어려운 의식적 노동이었다. 생각과 문장을 만나게 하는 것은 고단한 작업이었다. 문장을 구성해야 하는 단어들을 깊은 호수에서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곳에 있던 그들이,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호수 밑바닥에 마치 망각처럼 잠든 것 같았다. 언젠가 그토록 친밀했던 관계는 마치 수증기처럼 증발한 것만 같았다.
모국어로 글을 읽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노동이 되었다. 따옴표, 작은따옴표, 그리고 책 제목을 나누는 괄호의 사용이 많은 책은 눈에 거슬렸다. 괄호가 들어간 문장은 잘 읽혀서 마음에 들던 흐름이 좋은 글자들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세워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새 한국어의 용법이 달라진 걸까, 아님 글을 읽는 독자로서의 내가 달라진 걸까. 어느 쪽인 것은 사실 중요치 않았다. 좌절감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시적 상상력과 허용을 상상해내기가 힘들었고, 무엇이 되었든 글이, 혹은 시가 주는 심상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국어를, 모국어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느끼는 것은 거대한 공포였다. 미각을 잃은 혀로 음식을 먹는 것이 식사를 하는 행동의 온전한 의미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처럼, 그저 일상을 위한 매개체로서의 모국어는 내 영혼 깊은 곳의 한 자리를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잃어버린 언어였다. 영어는 여전히 낯설고 차가운데. 아마도 평생을 이렇게 두 언어와 두 세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살겠지. 두 세계 사이를 표류하며.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국어로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하루에 시 한 편을 필사하면서라도, 그렇게라도, 모국어를 길어내는 작업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