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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Mar 15. 2020

기억 연상

어제 장을 보러 갔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후로는 자주 갈 일이 없는 마트 근처에 사는 사람 집에 놀러 가는 김에 한동안 가지 않은 그 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점심 약속이 곧 있는 터라 시간에 쫓겨 장바구니에 사야 할 물품들을 급하게 담고 있었다. 고구마가 먹고 싶다는 동생의 부탁에 생각 없이 고구마가 쌓인 카트에 다가가 비닐봉지를 뜯어 담으려고 섰는데, 그 순간 그 카트 앞에 서서 고구마를 담던 지난 몇 년이 갑자기 한꺼번에 스쳐 지나간다. 열여섯 해를 내 막냇동생으로 지낸 땡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고구마였던 터라 그 먼 곳에 살면서 두 시간씩 운전해서 나와 장을 볼 때면 항상 고구마를 이 카트에서, 이렇게 담아서 사가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떠난 지 이제 일 년이 다돼가는데, 그 카트 앞에 서니 강아지를 향한 사랑, 고구마를 담으며 아픈 아이를 걱정했던 마음, 아이의 체온,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같은 잡다하고도 거대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그 모든 감정이 한 번에 밀려와서 결국 고구마를 든 비닐봉지를 붙잡고 고구마 카트 앞에서 오열했다. 


고구마 앞에서 고구마를 손에 든 채 슈퍼 한가운데에서 작년에 떠난 강아지 생각에 오열하는 내가 우습기도 하고, 슈퍼에서 오열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창피하기도 했지만, 슬픈 걸 어쩌누.


무언가에 연결된 기억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어떤 향기를 맡으면 떠오르는 과거의 어떤 순간, 비가 오면 비가 오던 날 만났던 어떤 이가 생각난다던가 하듯이, 무언가에 연결된 기억은 잊은 줄 알았던 과거를 순식간에 현재로 소환한다. 그리고 그 과거에 연결된 감정도 함께 돌아오는 것 같다. 노스탤지어라는 이름 아래 더욱 무언가 아련한 색채를 더한 채. 


더이상 오열하지 않기 위해서 꾸역꾸역 울컥울컥하는 눈물과 감정을 참으며 허둥지둥 장을 보고는 쫓기듯 수퍼를 나오며 "다신 안 올 거야..."하며 혼잣말로 다짐을 했다. 매번 다시 돌아와서 오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매번 다시 와서 이 아픈 마음을 희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매번 와서 아이가 생각나는 것이 무뎌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렇게라도 아이가 연결되는 공간을 남기고 싶은 걸까.

어쨌든 그렇게 그 수퍼마켓의 고구마 카트는 내게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아마 아주 가끔씩은 돌아가며 땡이를 기억하고 싶은 그런 꼭지점같은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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