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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Mar 19. 2020

“사랑한다”는 말

참으로 어색한 그 말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 말 밖에는 그 감정을 전달할만한 다른 단어가 없기 때문이겠지.

작년 이 맘 때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그 한 사람에게만 사용하던 전매특허나 다름없던 말인데,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가 오히려 흠칫, 하며 놀란다.


‘같은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이토록 어색한 것인 줄, 여태 몰랐다.

다들 알고 있던 것일까? 어떻게 같은 말을 다른 이에게 같은 의미로 전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 "사랑한다"에 대한 의미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가능한 한 그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랑한다"라고 말할 때마다 내 깊은 곳 어디에서 작은 내가 튀어나와 "그게 무슨 의미야?"라고 

나에게 탁구공을 튀기듯 바로 묻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랑한다"라고 대답을 할 때 (대개 그렇게 표현을 써야 한다고 느끼는 상황을 만났을 때) 눈을 피하며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비겁하다고도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는 전화를 끊을 때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자를 보낼 때마다, 

얼굴을 볼 때마다 습관처럼, 습관보다 더한 습관처럼 하던 표현이었는데,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같은 표현으로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영 어색하다. 

표현의 의미조차 제대로 손에 잡히질 않는다.



"'사랑'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에서부터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그때 느꼈던 감정은 차이가 있는가?"와 같은 비교형 질문. 혹은 "이 표현이 맞는 표현인가?" 따위와 같은 한심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나면 이내 머릿속은 질문들로 복잡해진다.



아마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귀속되었던 표현을 타인에게 쓰는 것이 주는 어색함 때문에 

내 안의 작은 꼬마가 이 난리를 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충분히 아끼고, 충분히 친밀하며, 충분히 행복하고, 충분히 함께 웃는다.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같은 표현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의미나 방식으로 쓴다는 것이 주는 일종의 낯섦일 거라 생각한다.



그래, 낯이 설다.



이 낯섦 때문에 아마도 어느새인가 "사랑한다" 같은 표현이 흔하지 않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감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주는 뭔가 모를 불편함.

사랑이 오히려 흔해 빠진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주는 막연한 좌절감이나 불안감.

그토록 사랑해도 결국은 헤어지더라 따위의 경험에서 나오는 알량한 자기 연민 같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국 "사랑한다"는 말은 언젠가 가졌을지도 모르는

빛나는 순간과 아름다운 의미를 잊은 채 하찮게 취급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또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므로, 당연히 같은 표현이 가지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꿈꾼다.

내가 언젠가 오십 줄에 들어 또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라고 

(그때는 왠지 멋있는 은발의 중년 부인이 되어있기를) 말할 때에는, 

아주 가득 담긴 의미와 환희와 함께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가득히 사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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