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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Dec 28. 2021

엄마의 자국

세상에 없는 이가 남기는 발자국 이야기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장례식장으로 직행했다. 삼일장을 마친 후 돌아간 집은 오후 햇빛이 가득 들어와 전체가 밝은 노란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노란 햇빛 사이로 먼지가 살짝 피어올랐다. 엄마가 없는 집은 참 조용했다. 가득한 따뜻한 햇볕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냉장고 문과 부엌 벽을 가득 채운 엄마의 메모들이었다. 대개는 포스트잇에 쓰였지만 가끔은 저렇게 아파트 문에 누군가 붙여놓은 일수 광고지(ㅋㅋ) 뒷면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건강 상식 메모들도 있었다. 아마도 건강 정보를 알려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급한 마음에 아무 종이나 찾아내어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것이겠지. 오메라 쓰리를 오메라 3리라고 쓴 걸 보며 진짜 우리 엄마답다 하면서 한참을 울면서 웃었다. 


성경구절도 있었다. 암이 발병하고 나서 시골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교회생활을 시작했던 엄마는, 어느새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새벽예배를 나가고, 주일 예배와 주중 소모임 등에도 열심히 나가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가난하고 아픈 엄마가 찾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라서 교회에서 무시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새삼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식탁 앞 창가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에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는 말씀 구절이 쓰여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죽음은 너무도 가까워서 어떻게 대할지를 알 수 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성경구절에는 믿는 사람은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도 있었으니까. 엄마는 믿음에 기대어 좀 더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까. 


가득한 엄마의 메모들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없던 엄마의 새로운 습관이었다. 지난 2년간 엄마 곁에 없던 나는, 하나하나 메모들을 읽으며 지난 2년간의 엄마를 읽어나간다. 메모를 쓰는 엄마가 홀로그램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엄마가 떠난 자리는 엄마의 자국이 메꾼다. 엄마의 노트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서. 이렇게 일수 광고지에 거칠게 휘갈겨 쓴 건강상식마저도 엄마를 떠올려주는 휘발성 기억의 단초가 되어 주기에, 우리는 곱게 지퍼백에 넣어 보관함에 넣었다. 엄마가 집에서 편하게 입던 냉장고 원피스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가 되어 보관함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여러 번 짐을 꾸렸다 푸는 과정에 어디선가 이 메모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오늘 불현듯 동생이 어디선가 메모를 찾아왔다. 하하하 엄마 메모 너무 반갑다! 하며 얼른 사진을 찍었다. 또다시 메모를 쓰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 와중에 오메라 3리라고 쓰는 웃기는 엄마, 우리가 오타를 지적하며 놀리고, 우리의 놀림에 허공에 주먹을 쥐며 '쯧!' 하며 혼내는 시늉을 하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휘발하듯 떠오르는 순간의 잔상들이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인듯하다. 엄마의 메모는 엄마를 불러오고, 아주 찰나지만 선연한 엄마를 그려낸다. 잊은 줄 알지만, 과거는 순간 무엇보다도 강렬한 현실이 되어 그 순간의 햇볕도, 공기 중에 반사되어 보이는 먼지마저도 지금으로 소환되어 온다. 


메모가 너무 반가워서 내일 액자를 사서 벽에 걸기로 했다. 

반가움 뒤에 남는 아픈 마음은 참, 십 년이 지나도 가시질 않네.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것도 삶에서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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