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나이 듦이란
얼마 전 누군가가 오락프로에서 나이 듦이란 행동하기 전에 말로 먼저 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때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다고 했단다. 이를테면, 한참 동안 앉아 있다 몸을 일으켜 일어나려 할 때 일어나는 자세를 시작하기도 전에 입으로 "자 일어나자 일어나자~(꼭 두 번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몸에 명령을 하는 것이거나, 혹은 '자기암시'를 걸어 몸이 반응하게끔 만드는 셈이다.
부끄럽지만 내가 그러는 걸 왕왕 발견한다. 하루의 끝 침대에 몸을 누이며 나도 모르게 "자, 자자 자자~"라고 내게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굳이 입으로 알려준다. "일어나자 일어나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다 일어날 때 "어이쿠 내 허리야" 하며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난다거나, 오랜만에 한 운동에 시큰한 무릎에 얼음찜질을 할 때도 젊음과 늙음의 중간 어딘가에서 빠르게 한쪽으로 치우쳐 움직이고 있는 내 나이를 발견한다. 참고로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철근이라도 씹어먹었을 내 치아와 위장은 이제 매우 섬세한 보살핌을 요구하며, 만에 하나라도 그 섬세한 요구에 소홀한 대답을 내놓았을 경우 가차 없이 치통과 위염이라는 어마어마한 징벌로 답한다. 나이의 위력이다. 치아를 오래 써 (그리고 긴장할 때 이를 앙 다무는 내 나쁜 습관도 한 몫했다) 미세한 금들이 가 있는 내 어금니들과,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사, 오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어마어마한 나이 듦의 군사들이 내 몸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은 나이 듦의 느리지만, 꾸준한 진행이다. 몸은 내 가장 든든한 기둥이라고 생각했던 한때가 철없이 지나가고, 이제는 도닥여서 한걸음 걸을 것을 두세 걸음 걷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지점에 이르게 됐다. 나 원 참.
언젠가 한탄하듯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은퇴를 한두 해 앞둔 농부의 아내가 큰 소리를 내며 웃더니, "젊은것이 어디서 감히!"라고 면박을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녀의 모습은 내 이십여 년 후의 모습일 거 아냐? 또한, 나는 그녀의 이십여 년 전 모습이다. 동네에서 소문난 목소리를 가졌던 그녀가 요새는 통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백인들에게는 비교적 흔한 질병인 황반변성 때문에 밤 운전은 꿈도 못 꾼다고도 하고. 나이 듦이란, 현재의 젊음에 가려져 다가오는 줄 모르는, 생각보다 지겨운 친구와도 같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이 내 삶에 그 존재를 각인시킨다. 잠깐 졸음에 빠져 아차, 하고 일어나 보면 나는 어느새 더욱 나이가 들어있고, 오늘의 젊음은 내일의 낯설음이 되어있다.
나이 듦에 관해 이야기할 거리는 삼일 밤낮을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갓난아기였던 때 보았는데 그 아이가 군대를 다녀와서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의 격세지감, 분명히 내가 가르치던 어린아이였는데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아 어엿한 부모가 됐다는 이야기가 주는 충격 등등, 사느라 바빠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나이 듦의 충격은 오랜만에 소식이 닿은 타인의 이야기에서 그 속도감을 느낄 때 배가 된다. "으악 누가 뭘 했다고?" 내 마음은 여전히 스무 살 꽃 청춘 이건만, 그 아이가 자라서 군대까지 제대한 아저씨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바람처럼 쉭-하고 불어 스쳐 지나간 그 수많은 나날이 정말 한 줄기 연기같이 느껴져서 허탈하기도 하다.
내 미간에 미세하게 생긴 내 천(川)만 해도 그렇다. 며칠 전 대낮 햇볕이 오랜만에 눈이 부시도록 좋은 날 찍은 사진에 미세하게 내 천이 미간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간 동안이라고 별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으악" 그 날 찍은 사진은 몽땅 다 지웠다. 왜 친구들이 점점 SNS에 자기 사진을 안 올리나 했더니 '못' 올리는 거였다. 생각을 골똘히 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인상을 쓰는 버릇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썹 사이의 피부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마흔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아마도 그런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 젊음이여
와, 젊음은 우리가 감사할 줄 모를 적에 순식간에 우리를 지나쳐가고, 젊음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만한 식견을 가질 즈음에는 우리에게 그 그림자만을 남긴다. 아쉽고도 서운하구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라고 노래했던 이상은의 노래가 이해되는 나이가 되는 것은 내가 젊음을 알만큼 늙었기 때문이리라. 젊음을 마음껏 향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더 놀고, 덜 걱정하고, 더욱 춤추었으리라.
젊은 베르테르가 그토록 절망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아직 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젊음이 주는 면책특권 같은 거랄까. 마흔에 이마에 내 천을 새긴 채로 아직도 인생의 무상함에 눈물을 짓는 것은 삶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오히려 지독한 나르시시즘이지 않을까. (혹은 지독한 우울증이거나) 젊기 때문에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좌절하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지 않을까.
언젠가 지독한 비관주의에 빠진 한 비혼 여인이 내게 한 말을 기억한다. "세상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아. 사랑이 아니라 '습관'이지. 이 나이의 우리가 하는 연애란 것은." 그녀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랑을 항변했던 내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지금의 사랑은 '습관'이지 않느냐는 그녀의 말이 서서히 무슨 뜻인지를 알아가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의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그토록 강렬한 것은 그들이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춘향이와 몽룡의 사랑이 그토록 장대비에도 꺾이지 않을 듯한 기개를 보인 것은 열여섯이라는 나이의 호르몬 작용이다.
나이 듦과 함께 우리의 사랑은 끊임없이 모양과 색을 변화시키고, 사전적 정의가 끊임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구불구불 흔적을 남기며 바뀌어댄다. 그러나, 사랑은 습관이라는 냉소적인 그녀의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의 어떤 나는 여전히 사랑을 믿고 싶어 한다.
"I am young at heart."
비록, 혹은 다행히 우리는 '마음으로' 젊을 수 있다. 비록 몸은 맹렬히, 그리고 꾸준히 시간을 덧입은 만큼 자신의 모양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지만, 우리의 마음은, -시간에 따라 영글어짐과는 별개로- 젊을 수 있다.
스무 살에 그토록 걱정하고, 그토록 비관하고, 그토록 염세했던 나를 지금의 나는 참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게- 덜 걱정하고, 더욱 행복하고, 더욱 춤추라고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조언은 내 마음의 스무 살의 내가 듣는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내가 덜 걱정하고, 더 행복하고, 더 춤추겠어? 그래서 오늘의 나는 내게 가장 예쁜 구두를 사 신고 춤을 추라고 가르쳐주고, 잠들지 않는 긴 밤의 시작에 재미있는 소설책 하나를 던져준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도록 신나게 웃으라고 슬며시 찔러 알려준다. 이마 한가운데 내 천자가 있는 것보다는, 눈가에 몇 줄기씩 잡히는 웃음 주름이 훨씬 더 낫지 않겠니.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를 반복해서 하다 보면, 이제는 연애가 지겨워지기도 한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스물 언저리의 내가 영화관에서 처음 손을 잡고는 그 손은 씻지도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었는데, 마흔의 나는 손 잡고 뭐고 다 필요 없이 그저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너랑 내가 좀 편해질 수 있겠니?'라고 묻고 싶어 한다. 서로를 맞춰가는 연애 초반의 설레면서도 격렬한 조율의 과정이, 지금의 나에게는, 두 번은 도저히 못할, 아주 힘이 많이 드는 엄청난 노동으로 비친다. 그 과정을 또 하느니 연애를 안 하고 말겠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그러나 참 이상하다. '사랑이 습관'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에 어느샌가 뒷방 할망구처럼 홀홀거리며 고객을 끄덕이면서도, 어느샌가 이 '습관 같은 사랑'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것조차 아까워하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 아주 깊은 곳 어딘가의 나는 아직도 '습관 같지 않은 사랑'을 믿는다. 비록 로미오와 줄리엣같이 눈에 콩깍지가 씌진 않을지라도, 춘향이와 몽룡이처럼 내일은 없을 듯이 서로를 밀어붙이지는 않을지라도, 나는 그들의 사랑과 '습관'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그래도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서 아름다운 공명음을 낼, 그 소박한 사랑 하나를 믿는다.
스무 살에는 추지 못했던 춤을 추기 위해 산 예쁜 댄스 구두와,
긴 밤 걱정에 잠 이루지 못하는 나를 위해 읽어주는 재미있는 소설 하나,
그리고 내 마음에 핫팩을 댄 듯 유일하게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랑하는 이 하나.
스무 살의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걱정이 덜하고, 더욱 춤추고, 더욱 행복한, '마음이 젊은' 내가 되었다.
그래서 나이 듦이란
실상 알고 나면 꽤 괜찮은 것인 것 같다.
젊은 날에는 알지 못했던 젊음을 이제 알고,
젊은 날에는 인생이 슬프고 고달파 알지 못했던 춤추는 법을 배우고,
젊은 날에는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이를 만나 사랑하고.
더 이상 젊다고 당최 말할 수 없는,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늙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젊다." 정도이다.) 지금의 내가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가장 젊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후회나 원망으로 물들이지 않고, 한번 더 웃고, 한번 더 행복하는 순간. 그 순간이 우리의 젊음을 사진처럼 찍어 간직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