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남으로, 마침내 집에 도착하다.

Coming Home by Leaving Home

by 솦 솦
Coming Home by Leaving Home.


대학원 입학 원서를 쓸 때, 내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으로 쓰였던 구절이다. "우리는 집을 떠남으로써, 마침내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삶에 무언가 빠진 부분을 찾기 위해 떠난 유학길이었기에 내 경우에는 더욱 도드라지는 말이기도 했다. 평생 나고 자란 내 어머니 땅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은, 결국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 여행이었다. 뼈가 시리도록 낯선 이 땅에서 밤마다 엄마 냄새 묻은 이불이 그리워서 눈물 흘리며 잠에 들었으면서도,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 새파랗게 낯선 땅 위에서 한 번도 도착해보지 못한 내 집에 도착한 것만 같은 아늑한 안정감을 느꼈다. 아마도 내가 마침내 공부하며 만나는 책들과, 그렇게 습득한 지식을 그러모아 내 손가락으로 창출해내는 내 언어로 쓰인 글에서 내가 맛 본 해방감 때문이었으리라.


'내 언어'를 찾기 위해 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공부해야 한다는 역설.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는 모순. 이 모든 역설적인 상황이 나로 하여금 시의 한 구절이었던 저 짧은 단어의 조합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참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향, 가장 집다운 그곳을 찾기 위해 있던 장소를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지 않을까. 굳이 실제로 살던 곳을 떠나 타지로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 나'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는 결국은 머물렀던 곳을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모두 다른 방식으로, 길의 출발점 위에 서는 경험을 하지 않을까. 익숙하고 모든 것을 아는 '이 곳'으로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이 불안한, 그러나 내가 찾아 헤매던 "그것"이 있는 '그곳'으로의 출발 선상- 그 길을 출발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아마도, "집을 떠나 마침내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여정은 짧을 수도 있고, 혹은 어쩌면 길을 떠난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길든 짧든, 마침내 가게 될 집으로 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치유일지도 모르겠다.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과,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이 넘실거리는 길이더라도, 우리는 마침내 '참 나'를 만나러- 기꺼이 그 어려움을 돌파해 나갈 것이다.


"따뜻한 글 하나"


다시 유학길에 오르게 될 때 내 목표는 "내 이름으로 된 따뜻한 책 한 권 내자"였다. 박사과정을 하려고 돌아온 길이었지만 교수가 되거나 유명한 학자가 되는 목표보다는(애초에 그릇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저 내가 배운 것들을 모두 둘러 안아 여미고 가꿔서 사람 마음을 보듬는 사람 냄새나는 글을 것이 목표였다. 내가 겪었던 이십 대의(그리고 지금은 삼십 대의) 좌절, 절망, 고통, 분노... 이 모든 것들을 마치 조개가 액을 뽑아 칭칭 감아 진주를 만들 듯, 내가 고통스럽게 배운 공부들과 함께 여며내어 따뜻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다.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것이 정답이다.


여담이지만 대학원 시절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며칠씩 읽었던 그 수많은 지식 보따리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충격적인 조각이 있다. 그중 하나는,


"1946년 미국은 수많은 령 중 하나였던 비키니 섬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핵실험을 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 프랑스 패션쇼에서 여성의 몸을 파격적으로 노출한 형태의 '비키니' 수영복이 처음 나왔고, 미국의 핵실험은 곧 파격적인 여성 수영복의 이름으로 치환되었다. 비키니 섬에서 자행된 미국의 핵실험으로 인한 학살행위는 곧 놀라우리만큼 빠르게 잊혔고, 대신 비키니라는 이름은 선정적인 여성의 바디 이미지와 함께 전 세계에 팔려나갔다. 비키니 섬의 역사는 곧 잊혔다."


내가 읽은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도, 저자가 누구였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아직도 지나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있는 대목이다. 예상치 못한 분노에 밤을 지샜었다. 승리자의 이름은 이렇게 쉽게 도색되고 변곡 될 수 있다. 또한 그토록 아픔이 담긴 비키니라는 이름을 인류 역사 최대 선정적인 의류(1946년 기준에서 보자면)의 이름에 담아 그 아픔을 그렇게 퇴색시킨 것에도 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키니를 입고 1946년의 각종 멋진 해변을 장악했을 멋들어진 여인들이나, 40년대에 이미 핵을 가지고 세계를 장악했던 미국보다, '비키니섬'에 살고 있었을 원주민들과 그 동식물들에게 나를 이입했던 것 같다. 백인들의 세계에서 아시안 작은 여자애로 살고 있던 나는 그 '역사에서 잊힌 존재들’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마치- 내가 잊히고 밟힌 것 같았다.


내가 공부하던 분야의 특성상 허구한 날 읽는 내용이 이런 케이스 스터디였다. 희망은 빛을 잃고, 정의는 하수에 박힌 것 같은 절망이 내 방 공기를 채우곤 했다. 거기 함께 처박혀 허우적거리며, 그저 언젠가 이 절망들을 모두 보듬어 앉을 수 있는 '따뜻한 책 한 권'을 쓸 수 있기만을 바랬었다. 이 모든 절망이 그래도- 마치 아주 추운 한 겨울, 공기도 얼 것 같은 그 순간에 누군가가 따뜻한 입김을 훅- 하고 불어 언 내 손을 녹여주려는 것처럼 따뜻해지는- 그런 따뜻한 글 하나를 써서 세상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 정도 내공이 언젠가는 쌓이기를 바라고 바랐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런 지혜와 용기는 지식만으로 쌓이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세월'도 큰 축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잊힌 존재’를 위해 글이라도 한 자락 남기고 싶었다. 이 재수 없는 세상에(당시엔 진짜 그렇게 느꼈다) '그래도 희망-......'이라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었다.



"그 따뜻한 글 하나"


운명이었는지 뭐였는지 간에, 그토록 염원했던 내 바람과는 달리 나는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지 않았다. 세상 끄트머리에 "꼬집"한 지식만큼 가져보고 싶었던 내 오랜 염원도 물거품이 되었다. "닥터 소피아"가 쓸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할 그 따뜻한 책 한 권도 이제는 (아마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 언어'에 대한 욕망은 여전한지,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글을 쓸 길을 만들어 내었다. 이제는 꼭 잰 척하는 학자들의 말들을 인용하고 연구자료들을 섞어 써야 하는 어려운 글은 아니더라도, 천천히, 아직은 배우며, 여전히 '내 언어'로 내 집으로 가는 여정에서 내 구원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이 곧 '잊힌 당신'을 향한 사랑의 언어가 되기를 바라며.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당신은 비키니섬처럼 잊히지 않았어.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우리 서로를 기억해줘요.'라고 말하며...... 그 길이 우리가 곧 우리의 집에 도착하는 바로 그 길이 되지 않을까.


여전히 사실 나는 내가 원하는 그 따뜻한 글 하나가 무엇인지 모른다. 내 친구의 딸을 위해 내가 얼기설기 종이를 모아 크레용으로 그린 그 동화가 그 아이에게 '그 따뜻한 글'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 비키니섬의 사람들을 위해, 그 섬의 동식물들을 위해 쓰는 시 한 줄이 '그 따뜻한 글'이 될 수도 있고,

또 혹시 모르지, 언젠가 갑자기 등장할지도 모르는 닥터 소피아가 쓸 심각한 이름의 논문이 '그 따뜻한 글'이 될지도.


그러나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세상 어느 누구 한 사람이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집에 도착하기를,

마음에 시원한 미풍이 한 줄기 훅-하고 불어들기를,

그래서 오랜만에 시원한 숨을 한 줄기 쉬어보기를,

예쁜 웃음 하나 공중에 띄워주기를,

잊혀진 눈물 줄기에 노래를 선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러면 마치 내 삶이 완성된 것 같은 행복을 맛보겠지.

내 집이 이토록 아름다웠나 새삼 고개를 들어 바라보겠지.

이것이 아마도 내가 바라는 나의 구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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