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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an 22. 2023

혹이 난 비둘기

영어로 비둘기는 두 가지 종으로 나뉜다. dove와 pigeon인데, 피젼은 한국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닭둘기이고, 도브는 성경에 주로 성령으로 표현되는, 피젼보다 훨씬 더 작고, 뭔가 고아한 이미지를 가진, 예쁜 새다. 


Pigeon vs. Dove <source: The Olympians>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고양이가 즐거워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일층 파티오에 아침마다 새사료를 주게 되었다. 그럼 고양이들은 바로 앞 창에 놓인 캣타워에 올라가 흥미진진한 사냥을 상상하며 몇 시간이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듯, 뭐에라도 홀린 듯 모이를 먹는 새 구경을 한다. 


원래는 미 중부지역에 있는 예쁜 새들, 카디널이나 뭐 이런 예쁘장한 새들, 을 부르고 싶었더랬는데 가장 먼저 모이는 것은 역시나 참새떼였다. 그러나 일일이 하나하나 얼굴을 보면 또 얼마나 예쁘장한지 모이를 먹으면서 동시에 응아를 하는 나쁜 습관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고양이들을 위해서, 또 밤새 배고팠을 참새들을 위해서 모이를 주곤 한다.


그리고 동네 다람쥐들도 몰려든다. 한국에서는 청설모라고 불렀던 것 같은 거대한 회색 다람쥐들. 왜인지 우리 동네 다람쥐들은 거의 남자아이들인 것 같다. 한동안 젖이 많이 불어있는 엄마 다람쥐가 오곤 해서 그 아이가 오기를 기다려서 땅콩 같은 견과류를 빻아서 주거나 했는데 어느 날부터 발걸음이 끊겼다. 아마도 어디에선가 삶이 다했겠지... 키우던 아기들이 무사히 자랐기를.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만큼을 또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저 예쁜, 작고 우아하게 생긴 도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 마리에서 시작해서 먹이 찾기가 힘든 지금 같은 겨울엔 다섯 마리까지 매일 찾아온다. 도브는 왜인지 이사벨라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듯해서 우리는 도브를 모두 이사벨라로 통칭해서 부른다. (아마 도브가 처음 찾아왔을 때 디즈니 영화 '엔칸토'를 보았고, 거기 이사벨라가 예뻤는데 도브도 그만큼 예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거대 피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역시 먹을 것이 없다 보니 여기까지 찾아든 듯하다. 그러나 너무 크고, 그들의 배설량도 엄청나며, 일단 피젼이 나타나면 다람쥐고 도브도 참새고 모두 도망가야 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보니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그러나 고양이들은 최고 반가워하는 손님이다. 아무래도 크고 묵직해 보여서 사냥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것도 같다. 아침마다 고양이들의 사냥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꺅꺅꺅꺅) 참고로 우리 집에서 피젼은 통칭해서 우르술라라고 부른다. (인어공주의 마녀 이름이 우르술라다. 우리가 얼마나 싫어하는지의 반증이다) 


우리 집에 매일 오는 다섯 마리의 도브 중 한 마리가 목에 혹이 있는데 최근에 보니 혹이 부쩍 커진 것 같다. 꽤 큰 혹을 달고도 잘 지내는 걸 보면 우선은 암은 아닌 것 같아서 안심은 되었지만 꽤 혹이 크다 보니 이제 아이가 움직이는데 조금씩 애를 쓰는 것이 보인다. 평소에 못돼서 다른 모든 도브를 내쫓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는데 움직임이 느려져서 이제 쉽게 다른 아이들을 내쫓지 못한다. 얼마나 저 아이가 더 찾아올 수 있을까, 자연스레 걱정을 하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지만, 한번 마음을 준, 시선이 닿은 존재들의 죽음은 어느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시카고의 겨울은 춥고 길다. 해가 나지 않고 구름이 낀 날들이 계속된다.

그나마 올해 겨울은 많이 춥지 않은 것,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이 동물들이 겨울나기가 조금 수월한 정도랄까.

그러나 춥지 않은 겨울은 다음 여름의 병충해가 심해질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올해 여름엔 모기나 각다귀 떼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삶은 겨울을 지나면 봄이 오고, 각다귀 한 마리가 코에 들어가는 여름이 오며, 또다시 가을과 겨울을 맞이한다. 이 반복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길고도 긴 겨울에 끝이 있음을 아는 것과 같은, 어쩌면 희망과도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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