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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Mar 12. 2018

옛날 볼링장 &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포일러)

먼지 풀풀

검보

오랜만에 날씨가 좋은 토요일, 아이들과 함께 옆동네 볼링장에 갔다. 

바 (Bar)에 볼링장이 붙어있는, 80년대에 나올 것 같은 사이키 조명이 실내를 현란하게 비춰주는, 

그런 신기한 볼링장이었다. 볼링도 하며 프렌치프라이도 먹고, 치킨 윙도 먹고, 맥주도 한잔하고, 뭐 그럴 수 있는, 먼지 냄새나는 오래된 시골 볼링장이다. 

25센트를 넣으면 나오는 저 풍선껌은 대체 내가 타이어를 씹는 건지 풍선껌을 씹는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이었는데, 아이들은 신이 나서 끊임없이 25센트를 넣고 스크루를 돌려 검보를 꺼내 집어 먹는다. 




최근에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되바라진 대여섯 살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다. '매직 캐슬'이나 '퓨처 랜드'같이 환상적인 동화의 세상 같은 이름의 모텔에서 사는 아이들. 매직 캐슬이나 퓨처 랜드는 하룻밤 숙식비가 40달러를 채 넘지 않는 아주 싸구려 모텔이다. 이름은 모텔이지만 여행객들이 사용하는 숙소라기보다는 신용이 좋지 않아 집을 렌트할 수 없는 하층민들이 사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내몰려 살고 있는 막다른 골목 같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여섯 살(다섯 살이었나?) 꼬맹이 무니는 기껏해야 이십 대 초반인 어린 엄마와 함께 산다. 엄마는 어린 무니를 두고 일을 나갈 수가 없어서 무니를 데리고 날마다 걷고 걸어 럭셔리 골프코스에 가서 향수를 팔지만 그 마저도 골프장 시큐리티에 걸려 여의치가 않다. 결국 그녀는 한 달에 천불 남짓하는 모텔비와 자신과 무니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온라인에 광고를 내고 몸을 팔기 시작한다.

무니의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의 신고로 DCFS (아동청소년 보호국) 에이전트들이 방문하고, 무니의 엄마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뺏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매일같이 피워대던 마약을 모두 버리고 모텔방을 깨끗이 청소했지만 아동보호국 에이전트들은 무니가 좋은 가정에 영원히 입양될 것이라고 '통보'하고 무니를 데려가려 한다. 죽도록 울고 싶을 텐데 무니의 엄마는 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바싹 말라버린 통나무처럼 굳은 몸짓으로 무니의 짐을 싸는 엄마. 아마도 그녀도 무니처럼 하루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싱글맘에게 나서 자라고, 무니처럼 길거리에서 구르며 컸을 것이다. 세상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무니를 임신했을 테고. 무니를 잘 키우고 싶지만 그녀는 '잘 키우는 법'을 모른다. 이것이 그녀가 아는 모든 것이다. 형편없는 엄마지만, 그녀는 무니를 이 세상 모두가 줄 수 있는 사랑보다 더 크게 사랑한다. 


무니에게는 엄마와 '잠시만' 떨어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에이전트들. 그러나 영리한 무니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알아채고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옆 모텔인 퓨처 랜드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영화 내내 당당하던 무니는 그제야 여섯 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그런 무니가 너무 안쓰러워 친구는 무니의 손을 잡고 무턱대고 뛰기 시작한다. 손을 잡고 친구가 달려간 곳은,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디즈니월드. 꿈과 환상의 나라지만 하루 사십 불짜리 방에 사는 아이들에게 디즈니월드는 가혹하리만큼 비싼 세상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의 나라는 그들의 세상 전부보다 값비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상과 시스템을 비키고 지나서 디즈니월드로 들어서고, 끝없이 달려 그 꿈과 환상의 나라 어딘가로 숨어버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아마도 현실세계에서 그 두 아이는 그 하루가 가기 전에 붙잡혔을 테고, 무니는 결국 엄마와 헤어져 동부 어딘가의 중산층 가정에 입양되어 '이제야 드디어' '정상적인' 삶을 살고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피자나 프렌치프라이로 끼니를 때우지 않고, 오가닉 식품으로 정성껏 요리된 음식을 먹고, 걸쭉한 욕 대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무니가 가슴 아프다. 영리한 무니는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며 크게 될까. 무니를 잃은 엄마는 어떻게 살게 될까. 


미국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식은 여러 면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방임되었거나 유기된, 학대받는 아이들의 경우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입해서 아이들의 즉각적인 안전의 확립과 동시에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고 보호하는 것은 정말로 경이로울 정도이다. (첨언하자면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유기, 방임된 아동의 수가 너무 많아서 아이들을 임시 보호하는 포스터 가정들의 퀄리티가 균등하지 않다거나 하는 여러 부차적인 문제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듯 서류로만 이야기하는 일방적인 정부의 개입은 무니 엄마 해일리가 무니를 향해 가진 애정의 깊이를 보지 못한다. 시스템이 제대로 되었다면, 아이와 엄마에게 정말 관심이 있었다면, 무니를 엄마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기회를 제공했어야 했다. 직업교육, 심리검사와 상담, 새로운 삶의 기회 제시. 이런 것들이 해일리에게 적절하게 주어졌다면 해일리는 무니에게 훨씬 좋은 엄마가 되어주었을 텐데, 법은 해일리의 마음을 보지 못했고, 무니의 마음을 읽지 않았다.




이 미국 중서부 시골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으레 우리가 간주할 만한 '정상적인' 개념의 가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도 이혼율이 높고, 편부모 가정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족'의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고 들었다. '정상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그 카테고리 안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타자화'시키고 '비정상적'으로 낙인찍는다는 점도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어쨌든지 간에, 볼링장에 데려간 스무 명의 아이들 중 친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세 가정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 혹은 아빠와 함께 살거나, 아니면 부모 모두 양육권을 포기해서 조부모와 사는 아이들, 혹은 부모가 이혼 후 다시 재혼해 재혼한 부모의 파트너와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혼 자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혼했어도 자신의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양육비를 책임지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부모들도 (소수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 시골 마을, 평균 임금이 4만 불도 채 넘지 않는 이 작은 외따른 마을에서 사람들은 '부모'의 의미를 알기 전에 아이를 가지고, '가족'의 의미를 알기 전에 가족을 양산한다.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방임하고, 아이들은 방임된 채 자라 또 다른 방임을 재생산한다.




아이들은 상처를 내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상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보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곯은 상처들은 아이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불안증, 불면증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작은 마을의 목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옆에 있어 주는 것', '사랑해주는 것', '방패가 되어 주는 것'이다. 교회만은 아이들에게 작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기를, 도망칠 곳이 필요할 때 무턱대고 친구의 손을 잡고 어른들의 시선과 시스템을 피해 도망올 수 있는 곳이 되어줄 수 있기를. 성경에 나오는 '피난성'이 되어주기를. 


브로디. 검보에 눈독 들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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