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강아지

땡이

by 솦 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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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이는 생후 삼 주가 갓 넘었을 때 부산에서 올라와서 서울 터미널에서 나와 조우했다. 다섯 마리 동생들을 등에 업고 첫배로 나와서 다른 동생들보다 덩치가 작았다. 내가 땡이를 만났을 땐 동생들 셋은 벌써 새 가족을 만나 떠났고, 땡이와 다른 동생 둘만 남아있을 때였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둘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땡이가 날 선택했다. 하얀 털이 몽실한 것이 덩치도 땡이보다 더 커서 건강해 보이는 동생을 먼저 안아보고 다음 땡이를 안아보았는데, 아이가 "으응~ (끼잉이었을지도 모르겠다.)"하는 소리를 내며 품에 파고들었다. 그 파고드는 모습에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전 얘가 좋아요-"하며 그대로 안고 집에 데려왔다. 그때부터 십육 년을 함께 지냈다. 땡이가 귀농하던 부모님을 따라 시골로 내려가서 한 동안 같이 지내지 못할 때도 있었고, 또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함께 지내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대학원을 다니느라, 졸업 후엔 일하느라 아이와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었다. 집에 하숙을 하는 하숙생 같았고, 땡이에게 나는 아마 밤에만 오는 밤손님 같았으리라. 나보다는 엄마가 땡이를 더욱 이뻐하셨고, 동생이 키우다시피 해서 나는 왠지 바깥에서 하숙하다 집에 가끔 오는 삼촌처럼 땡이랑 뭔가 약간 서먹하곤 했다. 나와 놀다가도 잠잘 시간이 되면 땡이는 엄마나 동생을 찾아가곤 했다.


미국에 동생과 함께 땡이가 건너오고 나서야 땡이를 더욱 알게 되었다. "끼잉~"으로 관계를 시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엄청난 찡찡이이다. 정말 엄청나다. 그런데 아이를 알아가면서 보니 그 찡찡거림이 이제 보니 애교이고, 나를 그만큼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표현이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애가 타게 이쁜지.

이제는 나와 함께 잔다. 침대 옆에 눕혀 놓으면 엉덩이를 조금씩 뒤로 밀어서 어느샌가 내게 붙어서 잠을 자고 있다. 이제는 열여섯이나 먹은 노견이다 보니 separation anxiety (한국어로는 분리불안증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레벨이 높아지다 보니 그런 것도 있다.

한 해 전엔 백내장이 심해져서 결국 한쪽 눈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하기도 했었다. 위스콘신 대학 동물병원에 수술 때문에 일주일을 맡겨두었는데 난생처음 우리와 떨어진 아이가 식음을 전폐해서 수술을 보냈다 땡이를 잃는 줄 알았던 어려운 때이기도 하다. 수술 후 아이가 전혀 먹지 않아 심장이 붓고, 간 기능이 급속히 나빠져서 병원에서 집에 한번 데려가서 먹여보라고 해서 담요로 아이를 싸고 두 시간을 운전해 집에 와서 눕히니 앉힌 그 자리에서 물 두 그릇을 비우고 밥 두 그릇을 비웠다. 그토록 우리가 아이에게 중요했다. 우리가 땡이에게는 우주였던 거다. 몰라서 미안했고, 그 정도는 해줄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다.


IMG_9539.JPG 아침마다 침대에서 마사지 받기를 기다리는 강아지의 뒤통수


얼마 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해서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첵업을 해보니, 의사가 열여섯이라는데 심장과 근육이 마치 10살 정도 같다고 해서 이 언니들은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심장에 murmur가 있어 (심장 잡음) 한 2년 전부터 심장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약이 잘 들은 탓이고, 근육은 열심히 산책을 시킨 탓이다.

이제는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사방에 들이박고 다니고, 당당하게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걷다가 우렁차게 알알! 거리며 우리에게 시중들 것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그저 귀엽고 애교스럽기만 했는데 이제는 뭔가 매우 당당하게 시중들 것을 요구하는 버릇이 나쁜 귀족 소녀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옆에 바싹 붙어 자는 강아지의 따뜻한 체취를 맡는 것이 행복하고, 귓가 털을 살짝 만지면 얼굴을 내게 가까이 붙이는 버릇을 사랑하며, 사랑스러워서 이마에 뽀뽀를 수백 번 해도 가만히 기다리고 앉아 다 안다는 듯이 그 사랑의 표현을 받아들여주는 우리의 작은 순간들을 사랑한다. 어미가 새끼를 빨아주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길래, 언젠가 한번 정말로 빨아보았더니 의의로 털이 짭짤했다. 그래서 다시는 그건 하지 않는다. 땡이는 아직도 내 손을 빨고 내 얼굴을 빤다.


땡이와 보내는 작은 아침의 순간들을 사랑하고, 잠자기 전의 작은 순간들을 사랑한다. 낮 동안 낮잠 자는 아이를 사랑하고, 잠시 깨어 우렁차게 짖으며 밥이나 간식을 내놓으라는 그 무례함도 사랑한다. 사람 아이였다면 예의가 없는 것에 걱정이라도 했겠으나, 이 아이는 평생 남에게 해를 끼칠 일이 없으니, 이 정도의 무례함은 역시 애교로 넘어갈 수 있겠다.


열여섯이라는 나이는 역시 만만치 않아서, 4시간에 한 번씩 남은 눈에 윤활제 같은 약을 넣어 주어야 하고, 눈의 통증을 조절해 주는 다른 약도 12시간에 한 번씩 넣어야 한다. 12시간에 한 번씩 심장약을 먹어야 하고, 점심시간엔 위장약을 먹는다. 나이가 들면 복용하는 약이 하나둘씩 많아지는 것처럼, 땡이도 그런 약들이 줄줄이 달려 있고, 스스로 알아서 먹을 수 없으니 언니들이 신경을 써서 약들을 챙겨 주어야 한다. 다행히 나도, 내 동생도 시간을 비교적 원하는 만큼 조절해 쓸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 보니, 둘이 번갈아 아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열 살의 심장을 가졌으니 앞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할 만큼 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리라 믿으며, 건강해준 아이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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