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
종종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 탓으로 돌리고는 하는데, 나는 내가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어릴 적 큰 맘먹고 부모님이 사주신 70권이 한 질로 된 위인전 세트를 정말 좋아했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사주셨던 책을 중학교 들어가기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곤 했다.
가장 좋아했던 위인은 헬렌 켈러, 처칠, 신사임당, 김유신(근데 왠 김유신), 원효대사와 사명대사 (불교 집안이라 '대사' 위인전이 꽤 들어가 있었고, 석가모니의 위인전도 심지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없었다. 셀렉션이 이렇게 편향적이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안창호, 안중근 선생 정도였던 것 같다.
베토벤이나 고흐 같은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어릴 적엔 아버지에게 맞고 자라고 커선 가난해서 고생만 하다가 청력까지 잃고 죽는 사람이고, 고흐는, 평생 정신이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위인전'으로 포장을 해놨으니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읽을 만한 글감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닌 게 정상이지 싶다. 여하튼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간혹 '위인'이라는 이름에 한데 묶여서 그 한 질의 위인에 포함되어 있었다.
헬렌 켈러와 사임당을 정말 좋아해서 그 둘의 이야기는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책의 모서리가 해어져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헬렌 켈러가 펌프에서 솟아 나오는 물을 water와 난생처음 연관시키던 날, 혼자 긴 시간 동안 입학시험을 치고 여대에 입학하던 날, 함께 울고 웃었다. 장애를 넘어서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 딸을 가지게 되면 꼭 이름을 헬렌으로 지어야지, 하며 그녀를 그렇게 마음으로 기리고 존경했다.
사임당의 이야기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릴 적 강릉에서 그림을 그리던 그녀, 스스로 호를 짓고 스스로를 '사임의 집'이라 칭하기로 한 당당한 여인, 몸이 약해 결혼생활이 힘들었던 그녀. 그래도 그림도 꾸준히 그리고 아들도 잘 길러낸 그녀, 그 모든 이야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강릉을 처음 가 오죽헌에 들렀을 땐 마치 오래된 연인을 만난 듯 그 공간의 모든 모서리들이 사랑스러웠다. 사임당처럼 나도 내 호를 짓고 싶었는데, 아니다, 뭔가 지었던 것도 같고. 그런데 기억이 전혀 안나는 걸 보면 그렇게 창조적이거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커서 생각해보는 지금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는 것은 그렇게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위대한 사람'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위대하지 않은 존재'를 수반한다. '위인'의 반대말은 '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이'이다. 이는 마치 내 아이는 수많은 공주들의 러브스토리를 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비슷하다.
70명의 '위대한 이' (내가 읽은 위인전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고, 그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그 자리에 연꽃이 피어난다. 그렇지만 예수의 전기는 동정녀에게 나시고 물 위를 걸으셨겠지. -,.-)들은 그들의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역경을 이겨낸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세상에 한 발자국을 남기는 '위대한 사람'이 된다. 위인전의 전개라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위인전을 이토록 사랑해 해어지도록 읽은 나는, 내가 어떤 의미로든, 크건 작건, '위인'이 될 거라 무심코 여겼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끊임없이 반복해 읽으며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위인들의 이야기는 어느샌가 마치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의지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마흔을 한 해 남긴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인'에 방점을 두는 것은 수많은 '평범한 이'의 삶의 '특별한 의미'를 간과하는 셈이 된다. 섬광과 같이 아름다운 한 순간을 위해 평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평범한 그 한 숨을 쉬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있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평범하다. 나는 정말로 '그들 중 하나'이다.
의외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 사실.
'위대하지 않은 나'는 다행히 꽤 행복하다. mediocre 한 라이프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은 꽤 괜찮은 라이프 부가 서비스라 생각한다. 박사 진학을 여러 사정으로 포기하면서 나는 '박사'라는 타이틀을 포기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한동안 느꼈다. 세상을 뒤집을 정도의 위인은 아니더라도 우주의 한 구석에 '꼬집'한 정도의 정통한 마스터는 되고 싶다는 욕망이 투영된 박사학위를 향한 의지가 꺾이면서 나는 한동안 이 유니버스에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되려고 태어났는가, 하며 자기비하도 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모두 흐르고 넘어서, 나의 '하루'가 주는 의미를 많이, 새롭게 발견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발 등에 코를 대고 잠을 자는 내 강아지 덕에 차가운 발등에 따뜻한 바람이 후욱-후욱 불어오는 이 행복함에 몸서리쳐진다. 평범한 삶이란, 그래, 이 유니버스의 한 꼭지에 꼬집한 자국을 내지 못하더라도, 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낸다면 무엇보다 위대한 삶이지 않을까.
평범함에 대한 사색.
아무것도 아님에 대한 애정.
소소한 행복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