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 봐

시집의 제목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빌려온 그런 제목

by 솦 솦

결국 글은 사람의 체온인 36.5도에 딱 맞게 잡아내는 것, 그것이 글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읽었던 작년 한국에서 가장 잘 팔렸다던 소설 단편집은 반도 되기 전에 덮었어야 했다. 삶이 주는 곡예 같은 높음과 낮음 중에 가장 서슬 퍼런 낮음만을 소름 끼치게 잡아낸 탓에 단편 하나하나가 마치 잘 벼려진 단도처럼 고통스러웠던 탓이다. 분명히 좋은 글일 것이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같은 울음이 비져 나오는 삶의 그 한순간을 잡아내는 좋은 글. 그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나를 보며 오히려 나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오늘 회의 중에 작은 글씨를 보아야 하는데 내가 인상을 쓰며 글씨를 멀리 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I am getting old!" 새로운 발견과 그에 따라 나오는 장탄식. 기분 좋은 발견은 아니었으나 나는 동시에 나이 먹어가는 내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나에게 "너 나이 먹었어"라고 말할 만큼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신기한 감정. 여태까지 모아 온 모든 경험들을 그러모아 앞으로 를 더욱 신나게 살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발견. 나이 들어감이란 늙어감이라기보다 여태 모아 온 것들을 더욱 잘 써먹을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만들어 볼 만한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 않을까? 예를 들면, 롤러코스터를 탈 때 눈을 감고 안전바를 꼭 붙들어 잡는 것보다는 무섭더라도 눈을 뜨고 안전바에서 손을 떼는 것(이왕 떼는 것 공중에 들고 있는 것)이 감가상각 대비 아주 최고의 스릴을 선사해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또한 기꺼이 써먹어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

물론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거나, 일어나거나 앉을 때 신음소리 비슷하게 "아이코-"하며 일어나는 것이 많이 재미있지는 않다. 그래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어나는 일이니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호모 데우스>에서 이제 이것마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다. 기운 빠지는 일이다.) 이왕이면 변화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일인 듯하다.


이만큼의 세월과 기억, 나이와 경험을 쌓아 이제 작은 글씨를 눈살을 찌푸리고 읽는 내가 보는 좋은 글은 사람의 체온만큼 따뜻한 글이다. 아마도 나는 '결국'의 희망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내가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글을 보는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결국에는' 괜찮으리라는 '희망'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결국 내가 좋은 글을 고르는 관점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견한 것인데 나는 '단편소설'이 싫다. 삶의 '한 순간'을 잡아내어 '자,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하고 던져주는 명제는 내게 마치 고깃집에서 아무렇게나 썬 고기를

그대로 내 앞에 철퍼덕 던져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raw 하고 가다듬어지지 않은 삶의 한 순간이 주는 선명한 어떤 무늬. 심지어 토할 것 같은 그 선명함.


단편소설은 그 '순간'을 오려내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반면, 장편소설은 삶이 긴 굴곡을 통해 그려내는 이야기의 '끝'을 향해 나아간다. 구불구불한 강 같은 모양일 때도 있고, 공중에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는 공이 지나가는 반원형일 때도 있다. 그러나 장편은 꼭 '구원'과도 같은 끝을 동반하고, 그 구원은 항상 독자에게도 동일한-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구원을 제공한다. 장편소설은 단편소설이 그려내는 순간과 순간을 모아 그 모두를 통해 '의미'를 완성해 나간다고 할까.


우리 삶도 장편소설과 같지 않을까?

잘 벼려진 단도에 찔린 것 같이 고통스러운 밤도 있고,

잘 빚어진 과일주를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친구들과 밤새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꿈같은 하루도 있다.

베갯잇을 속절없이 눈물로 적시며 밤을 하얗게 새우는 날도 있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 모두 비슷한 것 같은, 시간이 마치 멈춘 듯 지루한 시절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서서 뒤돌아보니-

구비구비 여기저기에 의미들이 숨어있다.

그리고 앞을 내다보니,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십 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여러모로 훨씬 나은 사람이다. 십 년 후의 나도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혹은 훨씬 더 나은 사람이기를 바라본다.


결국 우리의 삶은 "온통 아름답다"

그래서 내게 좋은 글은 "온통 아름다움을" 써 내려간 그런 글이다. 물론 순간순간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지만, 모자이크처럼 몽땅 모아보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라고! 하며 경의에 찬 찬탄을 하는 그런 글이 내게는 참 좋은 글이 된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되어 이 글로 너의 숨소리를 느끼고 너의 행복과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글이, 내게는 참 좋은 글이다.



언젠가 그런 글을 나지막이 산책하듯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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