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Memory

by 솦 솦


봄꽃 개화시기 및 봄꽃축제 일정(1).jpg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한국은 그렇게 갈 의미가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당장 한국에 들어간다 해도 나는 아마도 친척집을 전전하기보다는 서울역 근방에 레지던시를 구하거나 에어비앤비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숙소를 구하고 지낼 것이다. 친척들을 사랑하지만 한국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분들이 내가 잠깐 들렀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한번 들르지 않은 것에 서운해하실 것이 뻔해 아마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오지 않을까 싶다. 삼 년 전에 잠깐 들렀을 때에는 온 친척들이 모여 나를 위해 가족여행을 떠나기까지 했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매우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음주가무에 매우 강하다. 한 분도 해병대 다녀오신 분들은 없지만 해병대 정신으로 술을 드시고 놀기를 '완수'하신다. (가족 험담이므로 그냥 이 정도에서 줄여야겠다.)


가을 즈음 한국에 갈 생각을 하는데 가서 뭐 할까를 생각해본다. 먼저 떡볶이를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어볼 생각이고, 또 자장면을 먹을 생각이다. 최대한 많이 먹어서 돌아올 때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먹어야지. 가을볕이 좋은 한낮에 광화문에서 정동길까지 걸을까 한다. 부모님을 모신 곳에 혼자 가 볼 생각이고, 내 첫사랑(ㅎ)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을 근 십 년 만에 뵐 생각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선생님 은퇴가 많이 멀지 않으셨다. 한국은 65세가 정년퇴임이던가? 5년 남으셨나 보다. 세상에나, 육십의 선생님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래도 그 잘생김이 어디 가진 않으셨겠지.


나보다 네 살이 어린 친동생 같던 교회 남동생은 우리가 함께 자란 교회에서 집사님(!)이란다. 업데이트를 잘 하지 않는 그 친구가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는데, 왠 잘 모르는 남자분이 서계셔서 잠깐 당황했으나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 그 얼굴이 있다. 열아홉이었던 어린 아이가 삼십대 중반이 되어 내게 "누나-"하고 부르는데, 그래도 다행히 여전히 귀여웠다.(많이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오는 누나를 위해 십여 년 전 자주 가던 교회 앞 분식집에서 치즈 떡볶이를 대접하겠단다. 그 분식집이 아직도 같은 이름으로 같은 메뉴를 같은 자리에서 판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으나 꽤 괜찮은 추억여행인 것 같아서 좋다 했다. 신기하다. 그 철없던 것들이 저렇게 커서 회사원이 되고, 사업을 하고, 더욱이 가장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있다는 것이. 시간이란 것은 이렇게 지나는 것이구나, 하며 새삼 느낀다. 그래도 너는 영원히 혀 짧은 내 막내 동생일 거란다. 네가 아무리 나이 들어봤자 계속 나보다 네 살 아래라는 거.


올봄에는 갑자기 그렇게 벚꽃이 보고 싶었다. 따뜻한 낮의 공기가 아직 채 식지 않은 봄날의 저녁, 퇴근하고 걷던 벚꽃길의 그 따뜻한 공기와 벚꽃 향기, 바람에 날리는 벚꽃, 함께 간 이들과의 웃음.... 뭐 이런 것들이 너무 그리워서 한참을 빠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워싱턴 DC의 벚꽃이 그렇게나 아름답다며 가보라 하는데 한국 벚꽃이 아닌 것은 의미가 없었다. 아름다워봤자 지가 미국 벚꽃이지. 결국 향수병이었던 거다. 일본의 벚꽃도 아니고, 워싱턴 디씨 따위의 벚꽃은 댈 것도 아닌, 우리 집 뒷 공원에 흐드러지게 핀 그 벚꽃이 그렇게 보고싶었던 거다. 엄마와 김밥 한 줄씩 싸들고 돗자리 매고 나가 나무 아래 앉아 구경하던 그 벚꽃 말이다. 노곤하게 만드는 봄날의 햇볕과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을 맞으며 한 입 먹는 김밥은 진짜 맛있었는데. 아, 돌아올 수 없는 나날들, 사무치게 그리운 기억들.


그래도 기억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워할 것이 있는 것이 축복인 것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기억에 살아있는 내 사랑하는 엄마, 기억에 살아있는 내 교복 입은 천방지축 시절, 기억에 살아있는 한여름 밤의 정동길 데이트,.... 뭐 이런 것들.


나이가 드는 것의 좋은 점은 이렇게 쌓인 기억이 많아지는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 시기나 연도 별로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헷갈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많은 기억들이 쌓여 나를 이루는 것이 꽤 짜릿하다. 다행히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진짜 다행이다.


아마도 한국으로의 여행은 이번이 거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내심 있다. 혹은 가더라도 자주 가지 않고 아주 가끔 정도에 머물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번 가을의 한국 여행은 아마도 아주 철저한 '내 추억으로의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기억을 한 번 방문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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