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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Oct 01. 2018

전성기 뒤의 그림자를 알아볼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https://youtu.be/Kiyql1Cj2Ec

모차르트: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프리드리히 굴다, 피아노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빈 필하모닉



모차르트 음악의 정체성,배후의 슬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 그려내는 순수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의 배경음악으로 쓰여져 유명세를 타게 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굳이 이 영화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차르트표 천의무봉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손색이 없다. 이 곡이 세상에 나올 당시 모차르트의 창착력은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라, 수백 수천 번을 들어도 매번 무아지경의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영화로 유명해진 2악장? 이 곡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란 본래 슬픔이란 양념이 조금이라도 들어가야 비로소 점 하나를 찍는 법이다. 그리고 모차르트라는 작곡가는 이 명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다. 그의 음악은 대부분 밝고 단순하고 재미있지만 항상 배후에는 애수가 푹 고아낸 곰탕처럼 은근히 묻어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이 부분을 제거해 버리면 하이든이 된다(그래서 내가 하이든은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전성기 뒤의 그림자를 인식하다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할아버지의 퇴임식을 녹화해놓은 비디오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1악장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는데, 그 때 이유도 모르고 눈물을 살짝 훔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25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 기억을 반추해 보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디오 제작자가 그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넣어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할아버지의 심경과 모차르트의 심경은 상당히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곡을 쓸 당시 모차르트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퇴직 직전의 교장이란 자리는 교육자라는 직업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가 보장된 자리다. 여기서 내려와야 하는 그 심경이 결코 편할 리 없지 않겠는가?

 모차르트는 전성기의 한가운데에서도 그 빛나는 영감과 명성이 언제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기에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또한 슬프다. 다만 1악장에서는 배후에 숨겨두고, 2악장에서는 슬픔을 절반만 끄집어내놓은 듯하다. 그런데 절반만 끄집어내놔도 천재 예술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슬픔은 그 깊이가 다른 법. 평범한 이에게는 아주 묵직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에 삽입되지 않았겠는가. 어찌됐든 모차르트는 앞의 두 악장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전성기 뒤의 불안감과 슬픔을 정리하고 뛰어노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밝음을 지닌 3악장을 뒤에 덧붙이면서 명랑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이 협주곡이 우리에게 특히 강하게 어필하는 힘은 바로 전성기 뒤의 그림자를 의식하는 암시적인 힘이 사람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부분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엘비라 마디간을 만든 영화감독도 이걸 고려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 악장의 큰 그림으로 보면 이러한 가설이 확신으로 다가오곤 한다. 숙연해진다. 가볍게 접하기에는 상당한 무게감이 다가오기에.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것이 모차르트의 본질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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