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건 나의 이야기였다...
지금 내가 연습하는 연습실에는 전공자급 실력을 가진 취미생들이 두 명 있다. 그리고 묘하게 그들은 항상 내가 주로 들어가는 방의 양 옆에서 연습한다. 이 두 사람의 성향은 다르다. 한 사람은 정말 “우당탕탕” 친다. 늘 꽝꽝거리는 리스트 에튜드 같은 곡들만 연습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반대로 베토벤 소나타를 초, 중, 후로 나누어 한 곡씩 꼭 연습하고, 거기에 쇼팽 에튜드를 곁들인다. 그런데 연습하다 귀의 흐름에 따라 들어 보면 전자 취미생에게서는 뭔가 모를 거부감이 올라오는 반면, 후자 취미생의 소리는 날이 갈수록 듣기 좋고 오히려 친해져서 한 수 배우고 싶어지곤 한다.
이들 두 사람의 연습 장면을 옆에서 보면서, 늦은 나이에 피아노 전공을 시작한 나의 초창기 모습들이 오버랩됐다. 기본기고 뭐고 하나도 갖춰진 것이 없고 그저 화려해 보이고만 싶었던 시절이었다. 첫학기에 쇼팽 발라드 1번을 과제곡으로 치면서 왜 그렇게 많이 혼났던가를 생각해 보니 답이 나온다. 유연함, 노래, 레가토 등등은 사실 (내 한정으로) 후순위 문제다. 그저 포르테나 포르티시모만 나오면 내 딴에는 큰 소리 낸답시고 냅다 때려찍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니 손발이 오글거리고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다. 앞서 언급한 취미생이 줄창 치는 리스트 곡들은 실제로도 좀 우당탕탕 치는 맛이 있는 곡들이다. 그래도 신나게 우당탕탕 치니 자꾸 듣고 있으면 귀가 피곤해질 지경인데, 리스트보다 백 배는 더 섬세하고 프레이즈 하나하나에 짙은 의미부여가 된 쇼팽의 대곡을 우당탕탕 치는 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걸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는 새삼 재론의 여지도 없다. 레슨에 들어갈 때마다 날 호되게 혼낸 교수님의 마음이 어느 순간 이해가 됐다. 당시 그 교수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누나 남동생뻘 차이에 불과했다. 결코 쉽게 혼낼 수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되게 혼을 내신 건 어쩌면 쇼팽 발라드 1번을 우당탕탕 쳐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교수님의 지극히 괴로운 심정의 표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쇼팽 : 4개의 발라드 전곡
조성진, 피아노
그런데 내 취향이 낭만주의 음악 기준으로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보다는 슈만, 브람스 쪽에 쏠려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들은 바흐와 베토벤을 누구보다 충실히 계승한 전통의 수호자들이다. 그토록 고생한 쇼팽 발라드 1번의 첫학기를 지나, 다음 학기 과제곡으로는 베토벤 소나타 18번을 선택했다. 이 선곡도 상당히 다행스러운 수였다. 소나타 18번은 작품 31의 세 곡 세트 중 마지막 곡으로, 우아하고 고전적인 16번과 지극히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17번 “템페스트”의 장점만을 가려 뽑아 골고루 섞어 놓은 곡이기 때문에 기본기와 음악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여기서 짤없이 드러나는 기본기 부족에 역시 죽을 고생을 했다. 그러면서 나의 꿈의 곡이었던 슈만 판타지를 병행하면서 쳐 나갔다. 그러니 어느 시점부터 뭔가 손에 감기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난 1년의 휴학기간을 거쳤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음악의 신이 나를 알아서 FM으로 이끌어 줬다는 생각이 든다. 휴학 기간 때, 나는 독일에 여행을 간 일이 있는데, 대학원 첫 학기에 학부 마스터클래스에서 알게 된 사람을 라이프치히에서 다시 만났다. 이 만남이 날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그 사람도 나처럼 다른 걸 하다가 피아노에 대한 열정에 가슴이 끌려 음대로 흘러들어온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나처럼 슈만을 너무나 좋아했고, 당시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바흐에도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음악관이 기본적으로 너무나 잘 맞는데다가 나와 얘기할 때마다 바흐 썰을 풀면서 나를 완전히 바흐 매니아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 사랑의 감정이 섞여 들어갔고 결과적으로 그 사랑의 완성은 실패했다. 이것이 당시에 나름의 큰 충격을 줬는데, 그 사람에 받은 바흐의 기운(?) 에 실패한 사랑이라는 양념이 들어가자 손끝에서 나오는 나의 음악이 혁명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복학을 하고 레슨에 들어가자, 어느 순간 교수님에게서 지적보다는 칭찬의 비중이 높아져 갔다. 당시 교수님은 나에게 “늦게 시작했는데도 테크닉이 상당히 괜찮고 소리가 예쁘다”는 칭찬을 해 주셨는데,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구분이 안 갔다. 늘 나는 예쁜 소리 내는 것이 콤플렉스였고, 예고와 학부 코스를 거친 대학원 동료들에게 늘 테크닉적으로 후달린다는 생각을 그때까지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지나자, 수려하고 예쁜 소리로 정평이 난 피아니스트 임동민의 제자에게 내 소리가 예쁘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내가 연주하는 슈만 판타지를 듣고 눈물이 났다고 고백해오는 사람도 있었다. 피아노를 다시 한 보람이 느껴졌다. 내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들 말해 주는 사람들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웠다. 내 연주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다만 이 정도라도 만들기 위해 거쳐왔던, 문자 그대로 좌충우돌의 노력을 알아준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취미생들이 그저 우당탕탕 쳐대는 리스트가 어느 순간 거북스럽게 느껴지고 그들의 테크닉적인 허점이 현미경 보듯 훤히 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내 음악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강한 증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이건 확실하다. 멋모르고 그저 포르티시모만 나오면 때려누르기에 바빴던 전공 초창기의 나의 모습을 일정부분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것. 이랬던 나의 모습이 너무나 스스로도 혐오스러웠기에 지금 내가 쇼팽을 그토록 겁내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날로날로 채워져 가는 나의 인사이트를 밑천 삼아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거대한 벽처럼 느끼고 있는 쇼팽의 대곡들을 웃으면서, 박수 받으며 쳐낼 날이 오리라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