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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Dec 23. 2019

피아노를 예쁘게 치는 사람이 고수다!

예쁘게 친다=기본기가 잘 되어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난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워딩이 하나 있다. “소리 예쁜 사람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실제로 소리가 예쁜 사람은 늘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일종의 열등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클로징 포지션(2도 단위로 밀집된 16분음표 음형과 같은 패시지들, 예를 들면 쇼팽 전주곡 3번 G장조 같은 곡)을 영롱한 소리를 내며 잘 쳐내는 사람들이 난 너무 부러웠다. 반면 나의 현실은 그런 곡을 피해다니기에 바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음악을 깊이 파고들어갈수록 들을 때도 예전에 비해서 확실히 예쁘게 치는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들(리히터, 길렐스, 호로비츠 등의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브렌델, 쉬프, 조성진, 루간스키, 빌헬름 켐프 등의 음악성에 좀더 무게중심이 기운 스타일)을 더 찾아다니게 되었지만, 늘 나의 손가락은 예쁜 소리를 내기엔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것은 부러워할 만한 가치가 있고 또 그런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화려하고 파워풀하게 친다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피아니스트들조차 연습할 때는 최대한 예쁘고 세밀하게 소리내면서 연습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기회가 많이 있어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단지 실전에 와서 좀더 외향적으로 표출을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어릴 적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워본 사람들이면 웬만하면 다 기억하는 바, 선생님이 “옥구슬 굴러가는 예쁜 소리를 내라!”고 끊임없이 주문한다. 이건 정말 피아노 연주의 주법의 핵심 진리가 숨어있는 멘트다. 다만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는 이런 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론을 자세히 가르쳐 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 주문을 소화하는 아이는 단지 연습하는 과정에서 그 방법을 스스로 찾아냈을 뿐(이런 아이들이 끼가 있는 아이들이라고 보면 된다). 나조차 내 스스로 어릴 때는 그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지 못했던 것 같다. 연습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손만 좀더 잘 돌아갔을 뿐. 


어쨌든 몇 개의 주법서를 정독해 보고, 실제로 적용도 해본 결과 내린 결론은, “예쁜 소리 내기”가 피아노 기본기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문장으로 표현해 보면 대충 몇 개의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터치 방법, 멘탈리티, 팔의 사용, 스스로 자신의 소리를 듣기 등이다. 일단 터치를 할 때는, 적어도 곡을 익혀 나가는 과정에서는 논레가토가 나오거나 레지에로를 지시하는 부분도 빠른 부분일 경우 1차적으로는 레가토를 구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때 터치 방법은 각 손가락의 최대한 넓은 면적을 건반과 접촉하면서 손끝 피부가 건반의 바닥을 반드시 느껴야 하고, 다음 음으로 넘어갈 때는 이미 쳤던 음은 반드시 즉각 떼줘야 한다. 그리고 연습에 들어가기 전 주어진 곡의 큰 그림을 잘 파악하고 심상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다음에, 하나하나의 프레이즈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산하고 들어가야 거기에 맞는 터치가 자동으로 나온다.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는 만년에 매년 실시한 마스터클래스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건반위에서 꿈을 꾸라”고 계속 주문한 바 있는데, 이것은 바로 멘탈리티의 영역이다. 멘탈리티에 따라 나오는 터치는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영역이고, 거기에 직관적으로 손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팔의 사용은 포인트를 줘야 할 음을 친다거나 코어한 코드를 처리할 때 팔 근육의 순간적인 수축으로 소리를 임팩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을 직접 치거나 레슨을 해 줄 때 내가 항상 드는 생각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내가 피트니스클럽의 헬스 트레이너라고 생각을 해보면 이해가 빨랐다. 헬스 트레이너가 고객이 어떠한 부위의 운동을 할 때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듯,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이 근육 사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소리의 성격이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소리 듣기다. 이 훈련은 처음 시작할 때는 느린 곡으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자신이 연습하는 소나타나 모음곡, 변주곡의 느린 악장을 간과하지 말자. 여기에 베토벤 비창 소나타 2악장과 월광 소나타 1악장, 쇼팽 녹턴 2번(op.9-2), 슈만 트로이메라이 정도를 느린 곡에서 스스로 소리 듣는 연습을 하기에 좋은 곡으로 추천한다. 

https://youtu.be/uNtm3O4bfz4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27 "월광"

빌헬름 켐프, 피아노


 개인적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예쁜 소리를 내는 데 전보다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씩 내 소리가 예쁘다고 말하는 선생님들도 있기는 한데, 그런 피드백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모멘텀이 된다. 농담삼아 하는 말 중에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부러운 감정을 발전의 모멘텀으로 쓰고자 한다. 예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곧 고수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나는 글과 대화를 통해 늘 쇼팽이 겁난다고 반복적으로 얘기하곤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맘먹고 쇼팽의 대곡 한 곡 파고들면 어떻게든 우당탕탕 완주해낼 수는 있다. 다만 아직은 쇼팽이 의도한 그 수려하고 예쁘고 영롱한 소리를 낼 자신이 없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우당탕탕의 아이콘”으로 오해받고 있는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본질은 절대로 “우당탕탕”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화려한 만큼 더 세기가 있어야 한다.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도 마치 모차르트처럼 예쁘게 쳐낼 수 있어야 남들 앞에서 쳐낼 필요조건(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래서 섣불리 그들의 작품들을 건드릴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예쁘게 칠 줄 알아야 기본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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