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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Mar 11. 2020

낮은 자존감을 모멘텀 삼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그래서 더 안쓰럽다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국한해서 논해 보면, 큰 틀에서 교향곡 완성도의 끝을 1차적으로 보여준 인물은 누가 뭐래도 베토벤이다. 베토벤이 아홉 곡의 교향곡에서 구현한 완성도는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었기에, 후배 작곡가들이 느끼는 한계는 너무나 뼈아픈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9번 교향곡의 저주”가 왜 회자되고 있는 것일까?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베토벤 이후 활동한 수많은 작곡의 달인들이 대부분의 경우 교향곡에서 아홉 곡 이상 쓰지 못했다. 브람스의 경우 꽤나 다작을 남긴 작곡가이지만, 교향곡은 네 곡밖에 쓰지 못했으며, 그의 첫 교향곡을 무려 20년의 세월에 걸쳐 작곡하면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내 뒤에서 거인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느낌을 자네는 느껴봤는가?” 라고 쓰면서 베토벤의 절대적인 존재감에 힘들었던 심정을 토로했던 바 있다. 이것은 베토벤의 영향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곡가들의 영적인 영역까지 장악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뛰어넘었다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베토벤의 존재감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은 독일어권 국가에서 결국 등장했다. 안톤 브루크너(1824~1896)와 구스타프 말러(1860~1911)가 그들이다. 어찌 됐든 이들은 현 시점에서 인기도로는 베토벤을 능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을 올 때,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들 중 한 곡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게 느끼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형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생존할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둘다 당시 빈 음악계의 “꼰대 평론가” 에두아르드 한슬리크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계의 보수세력들에게 정치적인 공격을 감수해야 했던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공격에 브루크너는 수동적으로, 말러는 능동적인 역공으로 대처했다. 브루크너는 일단 태생부터가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촌놈”이었고, 주위의 비판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 자신의 작품 한 곡에만 해도 수많은 개정판들이 존재한다. 또한 그는 불혹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선생에게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초지일관 전통적인 대위법을 사용해 교향곡들을 썼다. 반면 말러는 달랐다. 음악적 보수파들의 공격을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빈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직을 따냈고, 강단 있게 활동했다. 또한 넘치는 자신감으로 곡을 쓰고 심지어 “성역”으로 불려왔던 베토벤의 교향곡들에 자신의 어법으로 가필을 하는 “용자짓”을 하기도 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베토벤으로부터 시작된 “9번 교향곡 징크스”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브루크너는 자신의 교향곡 1번 이전에 쓰여진 곡 두 곡에 0번, 00번이라는 번호를 붙였고, 말러는 자신의 아홉 번째 교향곡으로 작곡된 “대지의 노래”에 아예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교향곡들을 모두 즐겨 듣는 나는, 인간적인 끌림은 브루크너 쪽에 더 쏠려 있다. 브루크너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자존감이 심하게 떨어지는 인물이었고,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한 자존감 부족을 소재 삼아 음악을 빌드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CgXBp-oEIR0

 브루크너 : 교향곡 5번 Bb장조

 세르쥬 첼리비다케, 지휘

 뮌헨 필하모닉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는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을 가리켜 “비행기가 이륙하는 과정 같다”고 표현한 바 있다. 사실 비행기의 이착륙 과정은 비행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꼼꼼함이 있어야 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이 그렇다. 브루크너는 태생적으로 소심하고 꼼꼼한 인물이었기에, 음악 진행도 비행기가 이륙하듯 점진적인 빌드업을 거친다. 어떤 동기가 나타나면, 그것을 절대로 흘려 넘어가는 법이 없다. 꼭꼭 씹고 한번 더 들여다보고 음량은 서서히 올리거나 내린다. 이러한 과정에서 길이가 엄청나게 길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TMI”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을 “브루크너 시퀀스(동형진행)”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면은 자존감이 심하게 떨어졌던 브루크너의 오마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시하는 주제(예를 들면 교향곡 5번 아다지오 악장의 주제)는 누가 들어도 충분히 좋고 감동적이기까지 한데, 브루크너 홀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치고 또 고쳐놨다는 것이 대놓고 느껴진다. 물론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브루크너는 교향곡에서 오르간의 소리를 모방한 기법을 구현하려고 노력했고, 이것은 당대의 청중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당연히 공격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이 너무 대놓고 느껴져 가슴이 아파온다. 구현하려고 했던 소리는 분명히 파격적인 것이 맞지만, 기본적인 음악 진행 방식은 오히려 보수적이랄 만큼 전통적이고 세밀한 대위법을 구사한다. 비록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런 음악들이 당대에 그렇게 맹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브루크너는 자신의 나이 60줄이 넘어서 쓴 교향곡 7번에 와서야 비로소 대성공을 거둔다. 충분한 명예와 금전이 뒤따라왔지만, 너무 늦었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후속작 교향곡 8번, 9번에서 대놓고 드러난다. 8번은 7번의 후속작 개념으로 더욱 원숙해진 음악이 느껴지고 구성적으로도 빈틈이 없어졌지만, 반대로 불안감이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듯 특유의 오싹한 리듬과 음형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안정된 구도 속에 불안감이 짙게 나타난다. 9번은 말해 무엇하랴. 미완성으로 끝난 마지막 9번 교향곡의 정서란 이미 명줄이 다해버린 한 사나이가 신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절규와도 같다. 세련되고 정중하게 표현해서 “신에게 헌정한 작품”이지, 실상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절규인 것이다. 70을 넘긴 늙은 브루크너가 이제야 작곡의 자신감을 조금 얻었는데, 곧 신의 부름을 받게 생겼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https://youtu.be/JUXUFbSim3w

 브루크너 : 교향곡 9번 d단조

  귄터 반트, 지휘

  북독일 방송 교향악단


 혹자는 브루크너의 이러한 특성을 슈베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와 브루크너는 결이 다르다. 슈베르트가 자존감 부족이라는 20kg짜리 완전군장을 두 어깨에 지고도 어떻게든 앞으로 가는 느낌이라면, 브루크너는 어깨에 완전군장을 지고 반경 수백 미터 안에서 맴도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반대파들의 공격을 정면돌파할 자신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그 안타까움 말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소재가 충분히 좋은데, 그렇게 좌고우면해야만 했을까? 그래서 가슴이 더 뜨겁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브루크너의 음악을 움직이는 동력은 그 특유의 낮은 자존감이다. 분명 역동적으로 움직이긴 움직인다. 그러나 안쓰럽게 움직인다. 그가 천국에서라도 자신감 갖고 자신의 음악을 하면 좋겠다! 그는 분명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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