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 그 끝에서 만난 소금빛 바다

몰타, 그 기억의 물빛...

by Wanderlens

그 섬에는 세상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성당이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소원을 얼마나 빌고 싶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마음 한편 어딘가에 간절한 무언가를 들어줄 나만의 대나무 숲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른 아침, 소풍 가는 어린 날처럼 설레며 김밥을 말았다.

빡빡한 여행 경비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길 위에서 종종 땟거리를 놓치는 일도 많았고, 많이 걷다 보면 허기에 지쳐 더는 못 걷겠다는 순간도 많았으니까.


지난밤, 베지테리언과 비건의 차이를 논하던 친구는 까무잡잡한 얼굴로 달걀을 뺀 야채 김밥을 받아 들고는 꽤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게스트하우스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사로는 꽤 가파른 비탈길이었다.

한참을 내려가 요트 선착장을 지나고 나서야, 페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아마 승객들 대부분이 나처럼, 페리를 타려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큰 페리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실외 수영장이 세 개나 딸린 아파트만큼 커다란 페리를 곤돌라를 타고 바라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타고 떠난다는 건 그보다 훨씬 설레는 일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 길을 헤맸지만, 사람들의 행렬을 눈치껏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기실은 생각보다 한산했고, 시간 맞춰 도착한 배는 이미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간단한 수속을 마친 뒤 탑승.


페리 옥상에서 내려다본 몰타의 물빛은,

지금껏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색깔로 반짝였다.

가끔은 그 물빛이 색상표에선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궁금했다.


나는 이동 수단에 약하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 앞에 있어도, 멀미가 찾아오는 순간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그래서 항상 긴장한다.

평소에는 어떤 생체기에도 둔한 내가,

이런 땐 작은 솜털 하나에도 촉을 세운다.


다행히 이 페리는 무사히 나를 고조섬으로 데려다주었다.


다음은 엔진 기름 냄새로 무장한 버스와의 신경전이다.

손바닥 혈자리를 꾹꾹 누르며, 제발 이놈이 날 그냥 지나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무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동 수단을 몇 번이나 갈아타는 여정이었으니까.


울렁울렁 멀미와 싸우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하차 지점을 지나쳐 버렸다.
시골길이라 그런지 정류장 간 거리는 멀고,
버스는 황량한 길 어딘가에 나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먼지 꼬리를 길게 흔들며 달아났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작고 조용한 긍정이 나를 다시 앞으로 밀었다.
“더 좋은 걸 보게 하려는 거야. 더 많은 걸 보게 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한낮의 햇살은 따가웠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헤매고 다닐 건데…’
답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는 또 걸음을 내디뎠다.

휴—
드디어 지나친 한 지점까지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걸어가야 할 길.
버스도 없는 곳, 걸어서 갈 수밖에 없는 길.

소금염전이었던 해안길을 따라, 염전이었을 그 흔적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어디에 소금이 있을까?

소금 한 줌 없는 염전 해안이라니.

이왕이면 소금 수확 시즌에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이전에 보았던 한국과 베트남 남부의 염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지중해의 물빛이 주는 그 독특한 기운 때문일까.
고조섬 염전의 소금빛은, 마치 산호빛을 띤 푸른 소금일 것만 같았다.

소금은 없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조금 덜어내고, 조금은 채워 넣고 있었다.



Mgarr Harbour 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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