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Mar 08. 2021

슬픈 질투

 나는 누군가를 쉽게 질투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내가 인생의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질투심을 가졌던, 아니 아직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이미 20년도 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매년 나가던 음악제에서 금상을 탄 이후, 그 상이 매번 내 차지여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매년 성적이 좋기는 했다. 그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음악제에 그 아이가 나타난 이후 시상식에서 그 자리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었다. 얼굴은 힐끗 지나치며 봐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이름 세 글자가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같은 학교도 아니었기에 그다음 해의 음악제가 아니면 볼일은 없을 거라 여겼는데, 합창단 오디션에 합격 후 합창단에 처음으로 연습 갔을 때 거기서 다시 만났다. 합창단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그 아이와는 친해질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하는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콩알만 한 꼬맹이 주제에, 라이벌 의식이라는 게 있었던 걸까. 난 왜 그 아이를 멀리했을까. 부러움이었으려나...


 부유하지 않았던, 오히려 가난했던 집 아이인 내게 음악은 유일한 휴식처 내지는 도피처였던 것 같다. 나가는 음악제마다 상을 타고, 전국 단위의 음악제에까지 나가게 되어서였는지 주변에서는 나를 추켜세웠고 어느새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아주 당연히 예고에 진학해 음대에 갈 것이고, 조수미가 졸업한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갈 것이며, 오페라 가수가 되어 우아한 무대에서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나이에 세운 마스터플랜치곤 참 괜찮았다. 문제라면, 당시의 내가 경제력의 중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부모님이 당연히 뒷받침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음악으로의 길은 가난한 우리 집 사정엔 턱도 없었다. 그렇게 예고 진학은 시도도 못해보았고, 내 삶의 첫 번째, 유일했던 꿈은 그렇게 부서졌다. 


 항상 미련이 남았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성악 전공으로 유학 온 한국인 언니들과 가끔 교회에 함께 갔었는데, 성악 전공인 본인보다 내 음정이 더 정확하다든가, 초견이 좋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면 기숙사 방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난 정말 재능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레슨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오페라 가수가 되지 못하고 여기서 다른 공부를 마지못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이만큼 절절한 비극의 주인공이 따로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이미 중학교 때 그 친구의 배경 이야기를 들었고, 그냥 미웠다. 저기 아래 지방 어딘가 출신인 그 아이. 시골에서 오긴 했지만 부모님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딸을 유명한 성악가로 키워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고 한다. 음악제 참가를 위해 가족 전체가 전국을 옮겨 다니기도 했다던데. 딸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한 보람이 있었는지, 그 친구는 유명한 예고에 진학했고, 역시 유명한 음대를 졸업했다. 유럽 국가들을 돌며 연주도 하고 현지 음악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나는 무슨 스토커처럼 때때로 그 친구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그때 그렇게 잘난 실력으로 유명 음대에 들어가더니, 어디 얼마나 음악을 하며 잘 사나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유명 음대 나오고도 동네에서 작은 음악 학원 하나 꾸려간다거나... 성공에서 멀어진 모습을 보며 고소하다고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 음대에 안(못) 간 나의 선택 아닌 선택이 더 잘한 일이었다고 정당화해서 나를 위로할 수 있었을 테니. 유치하고, 저급하고, 왠지 내 진짜 심성을 까발리는 듯한 그런 감정이 참 불쾌하다. 어쨌든 그렇게나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건만, 이 친구는 그냥 잘났나 보다. 출산휴가 중에 집에서 목적 없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또 뜬금없이 그 친구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보이는 것은 연주회 이야기와 팸플릿. 팸플릿엔 그동안 내 스토킹의 범위에서 빠져있었던 콩쿠르 수상 데이터와 박사 학력까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잘 나가는 음대 교수님이 되어 있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얼굴은 어릴 때와 그대로인 그가 보인다. 그는 자기가 오기 전까지 금상을 타던 사람은 나였고, 그 이후로 내 인생 줄곧 자기를 질투해 왔다는 건 까맣게 모를 거다. 어쩌면 이제 희미해진 합창단 어린 시절 따위는 기억에서도 사라져서 내가 누군지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네가 이렇게 미운 걸까. 너를 보면 내가 더 못나 보인다... 있다고 믿었던.. 그러나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재능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너무 슬프다. 너를 보면 내 꿈이 부정당한 것 같아, 내가 꿈도 못 꿀 것을 꿈꿨던 것 같아 미치도록 슬프다.

작가의 이전글 가짜로 완성된 진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