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를 쉽게 질투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내가 인생의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질투심을 가졌던, 아니 아직도 가지고 있는 대상이 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이미 20년도 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매년 나가던 음악제에서 금상을 탄 이후, 그 상이 매번 내 차지여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매년 성적이 좋기는 했다. 그 아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음악제에 그 아이가 나타난 이후 시상식에서 그 자리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니었다. 얼굴은 힐끗 지나치며 봐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이름 세 글자가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같은 학교도 아니었기에 그다음 해의 음악제가 아니면 볼일은 없을 거라 여겼는데, 합창단 오디션에 합격 후 합창단에 처음으로 연습 갔을 때 거기서 다시 만났다. 합창단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그 아이와는 친해질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하는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콩알만 한 꼬맹이 주제에, 라이벌 의식이라는 게 있었던 걸까. 난 왜 그 아이를 멀리했을까. 부러움이었으려나...
부유하지 않았던, 오히려 가난했던 집 아이인 내게 음악은 유일한 휴식처 내지는 도피처였던 것 같다. 나가는 음악제마다 상을 타고, 전국 단위의 음악제에까지 나가게 되어서였는지 주변에서는 나를 추켜세웠고 어느새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게 됐다. 아주 당연히 예고에 진학해 음대에 갈 것이고, 조수미가 졸업한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갈 것이며, 오페라 가수가 되어 우아한 무대에서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린 나이에 세운 마스터플랜치곤 참 괜찮았다. 문제라면, 당시의 내가 경제력의 중요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부모님이 당연히 뒷받침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음악으로의 길은 가난한 우리 집 사정엔 턱도 없었다. 그렇게 예고 진학은 시도도 못해보았고, 내 삶의 첫 번째, 유일했던 꿈은 그렇게 부서졌다.
항상 미련이 남았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성악 전공으로 유학 온 한국인 언니들과 가끔 교회에 함께 갔었는데, 성악 전공인 본인보다 내 음정이 더 정확하다든가, 초견이 좋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면 기숙사 방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난 정말 재능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레슨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오페라 가수가 되지 못하고 여기서 다른 공부를 마지못해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이만큼 절절한 비극의 주인공이 따로 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이미 중학교 때 그 친구의 배경 이야기를 들었고, 그냥 미웠다. 저기 아래 지방 어딘가 출신인 그 아이. 시골에서 오긴 했지만 부모님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딸을 유명한 성악가로 키워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고 한다. 음악제 참가를 위해 가족 전체가 전국을 옮겨 다니기도 했다던데. 딸에게 아낌없는 투자를 한 보람이 있었는지, 그 친구는 유명한 예고에 진학했고, 역시 유명한 음대를 졸업했다. 유럽 국가들을 돌며 연주도 하고 현지 음악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나는 무슨 스토커처럼 때때로 그 친구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그때 그렇게 잘난 실력으로 유명 음대에 들어가더니, 어디 얼마나 음악을 하며 잘 사나 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유명 음대 나오고도 동네에서 작은 음악 학원 하나 꾸려간다거나... 성공에서 멀어진 모습을 보며 고소하다고 느끼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 음대에 안(못) 간 나의 선택 아닌 선택이 더 잘한 일이었다고 정당화해서 나를 위로할 수 있었을 테니. 유치하고, 저급하고, 왠지 내 진짜 심성을 까발리는 듯한 그런 감정이 참 불쾌하다. 어쨌든 그렇게나 확인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건만, 이 친구는 그냥 잘났나 보다. 출산휴가 중에 집에서 목적 없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또 뜬금없이 그 친구의 이름을 검색했더니 보이는 것은 연주회 이야기와 팸플릿. 팸플릿엔 그동안 내 스토킹의 범위에서 빠져있었던 콩쿠르 수상 데이터와 박사 학력까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잘 나가는 음대 교수님이 되어 있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얼굴은 어릴 때와 그대로인 그가 보인다. 그는 자기가 오기 전까지 금상을 타던 사람은 나였고, 그 이후로 내 인생 줄곧 자기를 질투해 왔다는 건 까맣게 모를 거다. 어쩌면 이제 희미해진 합창단 어린 시절 따위는 기억에서도 사라져서 내가 누군지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네가 이렇게 미운 걸까. 너를 보면 내가 더 못나 보인다... 있다고 믿었던.. 그러나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재능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너무 슬프다. 너를 보면 내 꿈이 부정당한 것 같아, 내가 꿈도 못 꿀 것을 꿈꿨던 것 같아 미치도록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