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제 그녀는 퇴근길에 좀 어지러움을 느꼈다.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열심히 야근해서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곁에 있지 못할 때 쓰러지거나 할까 걱정이 됐다.
잠들기 전 짧지만 간절하게 기도하고 잠들었다. 오늘 그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나는 '나일롱 신자' 라는 말도 과분할만큼, 아무 종교활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란 간사해서, 간절할 때는 결국 신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평소엔 신을 불신하고 비난하던 사람들도, 무력하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땐 믿음이 생긴다.
내가 너무 무력해서, 오늘도 마음 속 깊이 기도해본다.
내가 곁에 있지 못할 때, 그녀에게 아무 일이 없게 해주세요.
내가 곁에 있을 때,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다행히 그녀는 어제보다는 나은 몸 상태로 일에 임한다.
숨도 쉬지 않고 몇시간 동안 자료를 작성해서 사장님께 보고도 해본다.
사무실에 들어온 맛있는 수제 쿠키 선물을, 의지가 강한 그녀답게 조금만 맛본다.
일하는 중에 나에게 즐거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녀의 제안으로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우관중 씨의 국내 첫 단독전을 가기로 계획해 본다.
분명히 종이에 먹으로 그렸을 뿐인데, 화려한 색깔의 추상화처럼 튀어나오는 느낌.
교양이 넘치는 그녀와 손잡고 직접 감상할 생각에 흥분된다.
그녀와 손잡고 보려고 미리 구입한 뮤지컬 표들의 바코드를 어루만져 본다.
Notre Dame de Paris. Wicked. 둘 다 내한 원어 공연.
Frieze Seoul 의 스케쥴도 계속 체크해본다.
그녀와 묵을 호텔을 열어본다. 주변 갈만한 레스토랑들과 갤러리들을 찾아본다.
앞으로 그녀와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려면 건강이 필수다. 그녀의 건강이 걱정될 때마다, 나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기로 한다.
그녀와 내가 언제까지 건강할 수 있을까.
그녀가 살면서 이루고 싶은 모든 것을 이룰 때까지만 제발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가 이루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나도 오래오래 나의 건강을 지켜 나가리라.
세상을 살다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건강도 그렇다. 술담배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친구가 20대의 나이에 암이 생기기도 하고,
전문가들이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과하게 한 사람이 100살까지 살기도 하고,
나는 안전한 곳에 가만히 서있었을 뿐인데 어디선가 누가 부딪혀와서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총을 쏜 살인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한 사람만 살려주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도 운이 좋지 않아 되지 않는 일이 있고,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가는 일이 허다하다.
인간이란 한없이 애잔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이런 연약한 한낱 몸뚱아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오로지 그녀와 같은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녀와 같은 사람에게 오롯이 사랑받을 수 있고,
각자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완벽함을 찾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끌어주고 밀어주며,
미래를 함께 상의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음에 정말 신에게 감사하다.
신은 존재한다.
그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함께 있을 땐 그녀와 함께 하는 현재에만 집중하게 하는 사람이고,
그녀와 떨어져 있을 땐 그녀를 만나는 미래에만 집중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나의 미래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체력을 가다듬으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고요히 잠든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