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하면 몰라
"언니야~ 하선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
살가운 동생 유주의 전화다.
"잘 모르겠어. 통화해봐"
사실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내 친구 하선이. 그녀는 파산과 함께 이혼했다.
그녀의 고통에 대해 없는 자리에서 가십 나누듯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직접 들어보라는 이야기였다.
며칠 뒤 통화한 유주는 하선이가 변호사를 알아본다 했다.
눈물이 났지만 참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슬픈 티를 내는 것조차 가식 같아 보였다. 하선이에게 문자를 했다.
"하서나, 방학하면 애기들 데리고 놀러 와. 수영하고 놀자."
하선이의 그 일 이후 우리는 1년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는 게 어려웠고. 그녀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고 싶었다. 내가 전화해서 건넬 수 있는 말이 없으니까.
그저 마음이 정리되거나, 혹은 내가 그리워질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가끔 하는 우리의 통화는 묵직해졌다. 시시콜콜한 안부를 묻던 때가 그리웠다. 애써 웃긴 이야기를 끌어 왔다. 한 번은 펑펑 울던 하선이가 더 숨죽여 우는 내 목소리에 "네가 왜 울어"라고 하는데, 대답할 수 없었다.
네 상황이 아파서. 네가 그렇게 돼서 슬프다 말해야 할까. 그 말이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파지 않을까. 자존심 빳빳한 우리는 그렇게 비슷한데. 내 말에 네가 얼마나 비참해할까. 나의 위로가 값쌀 것만 같아 그마저도 건넬 수 없었다.
통화하면 일상적인 이야기뿐.
마음에 맺힌 질문은 꿀꺽 삼키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통화했다.
그 마저 공부를 시작하며 건넬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유주에게 내 안부를 물었다 했다.
"너 요즘 윤희랑 연락해? 통 연락이 없다."
"언니, 윤희 언니 원래 연락 잘 안 하잖아. 내가 먼저 문자 할 때 말고는 연락 안 와. 그리고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직접 전화 한번 해. 언니 이러는 거 자격지심이야."
유주는 나와 만난 자리에서 저 이야기를 털었다. 자격지심이라.. 그 단어에 하선이 마음을 후볐을 걸 알아 더 말을 잇지 않았다. '하선이한테 연락해야겠다...' 목구멍이 또 콱 막힌다. 하선이가 느꼈을 소외감, 혹은 그녀의 현재 상실감, 나의 따뜻함 등을 기대했을 거란 생각이 뒤엉켜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드문 드문 문자를 하곤 힘든 이야기 대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짧은 전화 한 통이었을 뿐이었다. 화선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먼저 내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유주에게 했을까, 뒤엉키는 생각이 어지러워 두통약을 먹었다.
하선이와 나의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20대 시절 연애의 끝에서 비참하게 일그러진 나를 끌어낸 건 하선이었다.
'나와, 드라이브 가게.'
일찍이 면허를 딴 그녀는 나를 데리고 경기 외곽으로 갔다. 인공폭포가 떨어지는 예쁜 카페 안에서 장작이 타들어 가는 걸 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윤아, 이렇게 예쁜데 너를 그만 괴롭혀."
나를 지켜내라고 했다. 그녀는 새침하고 도도하지만 마음 한편 인정 많은 애. 나는 위로에 서툴어 묵묵히 뒤에 서 있는 걸 잘하는 사람. 그녀가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일까. 밤이 깊었지만 문자를 남겼다.
'하선아, 늘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가벼워지면 연락 줘. 나는 변함없어. 많이 보고 싶다'
깊은 어둠처럼 그녀의 마음에 깊숙하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