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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09. 2019

발바닥의 꼬순내

   나는 새와 햄스터가 무섭다. 어릴 때, 개 키우는 걸 반대한 부모님은  금화조 두 쌍을 사다 주었다. 새들은 늘 깃털을 푸덕대며 싸웠고, 그때마다 깃털과 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새장을 치우다 헛구역질도 했지만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첫 애완동물이었기에 애틋하게 보살폈다.

  하루는 새장을 청소하다 알을 발견했다. 지름 1cm의 뽀얀 타원형의 알. 알에서 깨는 새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나는 투명한 캔디 통에 솜을 채워 둥지를 만들어 넣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둥지를 확인했는데, 새알이 바닥에 깨져있었다. 늘 먹는 계란 프라이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깨진 새알 밖으로 흘러나온 노른자는 다르게 보였다. ‘둥지에서 떨어졌나?’ 새장에 얼굴을 대고 말했다.

  “속상했지? 괜찮아” 말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들은 연신 고개를 돌리며 깃털을 가다듬거나, 모이 그릇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졸았다. 며칠 뒤 또 알을 낳았다. 나는 매일 알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어느 날, 푸드덕 대며 싸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달려가 보니 흰 수컷 두 마리가 알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다. 찢긴 알 사이로 흘러나온 노른자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걸 먹겠다며 달려들었다. 징그러웠다. 그날 일은 새에 대한 기억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비슷한 경우가 햄스터를 키울 때도 있었는데, 나는 햄스터가 귀엽지 만은 않은 동물이란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뒤뜰 사육장에는 토끼와 개가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도, 하교 시간에도 사육장으로 갔다. 겨울 방학이 되었을 때, 김장 후 남은 배추 겉잎을 한 아름 모아 사육장에 가지고 갔다. 배추를 들이밀자 토끼 한 무리가 몰려와 받아먹는데, 벌름대던 토끼 코가 어찌나 귀엽던지 한참 똥냄새를 참으며 쳐다보았다.

  그런 내게 수위 아저씨가 토끼 한 마리를 주셨다. 보드라웠다. 나는 뒤도 생각하지 않고 받아 왔다. 엄마에게 들키면 혼날게 뻔하니 몰래 키울 작정으로. 책상 서랍 중 제일 큰 곳을 정리하고 목도리를 깔고 물과 사료 그릇을 넣었다. 집에 혼자 있을 때는 토끼와 거실에서 놀았다.

  바닥에 누워 토끼가 앞발로 귀를 쓰다듬는 걸 바라보면 어느샌가 내 얼굴에 와 같이 볼을 비비곤 낮잠도 잤다. 은밀한 사육장은 오래가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엄마가 토끼똥 냄새가 방에서 진동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나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정든 토끼를 학교 사육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개를 키울 수 있었다. ‘코카스파니엘’ 종인 쿠키는 보드라운 갈색 털에 살짝 높은 목소리를 가졌고, 두툼하고 폭신한 발바닥에서는 꼬순내가 났다. 쿠키와 침대에 누워서 쿠키 발 냄새 맡는 게 좋았다. 친구들과 놀다 혼자 있을 쿠키가 마음에 걸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시간이 더 지나 회사원이 되었을 때는 회사에서 쿠키한테 전화해보고 싶기도 했다.      

 “쿠키 뭐해?”하고 물어보면 “응, 나 앉아서 열심히 엉덩이로 그림 그린다.” 이런 말 하면 얼마나 좋을까?

  쿠키의 양볼을 주욱 늘리곤 코를 깨물면 몽글몽글한 코에서 콧물이 묻어 나왔다. 입 주변으로는 하얀 털이 보송보송, 흰털 덮인 선인장처럼 보들 거렸다.

몽글몽글 부드러운 쿠키 코

  그런 쿠키가 내 곁을 떠나던 날 나는 회사에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쿠키한테 입혀 놓고 사람 같다며 깔깔 댔던 목도리 스웨터와, 목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끼던 개를 잃은 후유증은 일 년 넘게 지속됐다. 살도 빠지고 개가 나오는 티브이도 보지 못했다. 다른 개를 키울 수는 없었다. 쿠키에 대한 배신 같았으니.

  


그런 내게 아빠는 고양이 입양을 권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종묘로 키워진 페르시안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몽실이

품종이 좋아 번식용으로 키워져 노쇄했고 병세가 짙었다. 데리고 와서는 몽실몽실 털 풍성해지라고 몽실이로 지었다. 그녀는 삼개월간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었다. 상처가 느껴졌다. 처음으로 내 무릎으로 올라와 그르렁 대던 건 우리 집에 온 지 오 개월 후였다. 곁을 주면서도 주지 않았던 몽실이는 내 곁에서 몇 년간 잘 살다 떠나갔다.      




  ‘난’이는 아빠 농장에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였다. 난이는 쿠키와 비슷하다. 통통하고 크다. 먹는 걸 좋아하고 순진하다. 난이한테도 꼬순내가 난다. 가끔 쿠키가 난이로 환생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난이는 중성화를 한 뒤 살이 많이 쪘는데 사람들이 임신했냐 물을 정도로 배가 나왔다.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면 뱃살이 양옆으로 출렁 거려 보는 사람들이 웃는데, 왠지 내가 더 부끄럽다. 다이어트 사료도 먹이고, 중성화 수술을 할 때는 지방도 걷어냈다고 하던데, 어째선지 몸집이 더 커진다.

  가끔 난이를 보면 우리가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형제들과 지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난이 형제들 말이야~ 다들 말랐고 대부분 이삼 년 안에 농장에서 안보이더라. 그런 걸 보면 돼지(난이의 별칭)는 우리 집 와서 포동포동 살찌고 구 년을 살고 있잖아. 그것도 저놈 복이여.”

  진실은 난이만 알겠지만 내가 결혼하면서 난이를 키우기 위해 정원이 있는 집을 선택하기도 했으니, 저 녀석의 삶도 꽤나 괜찮은 듯하다. 정원에서 데굴대며 늘어져 있는 걸 보면.

분홍입 사이로 비죽 나온 이빨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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