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사서 마시는 판에 달빛은 아직 공짜네
전생에 까마귀였는지 나는 반짝이는 것에 매혹된다. 반짝임은 늘 알 수 없는 만족감을 채워주었다. 스와로브스키 매장에 가면 각종 크리스털 장식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베니스에 갔을 때는 70만 원짜리 유리공예품을 들일까 말까로 한참을 고민하다 돌아섰다. 크리스털은 빛이 있어야 반짝임을 내어주는데, 집에는 그만큼 발하게 할 조명이 없다. 만지면 지문이 남고 먼지를 잘 털어 내주어야 하는 고가의 장식품. 아직 그것을 가질 시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이내 돌아섰지만, 반짝이는 것에는 늘 시선이 머문다.
물도 사서 마시는 판에 달빛은 아직 공짜네
-다이내믹 듀오의 SUMMER TIME(자리비움)-
잠실 살 때, 퇴근길 2호선을 타면 한강을 향해 내달리는 구간이 있다. 지하를 달리던 열차가 지상으로 올라올 때면 귀가 트인다. 작은 액정을 보던 고개를 들어 커다란 창으로 눈을 돌리면 주황색 가로등 불빛과 차량이 내뿜는 붉고 노란 불빛이 어우러져 아른한 눈부심을 선사했다. 달이 강으로 떨어져 흩어진다. 오래 눈에 담고 싶은데 열차는 빠르게 달려 단단한 벽에 둘러 쌓인 승강장으로 져들어간다.
‘삭막한 세상살이 낭만이 촉촉이 스며야 살아낼 수 있다.’를 외치던 나와, 현실성 만렙인 남편은 무던히 부딪혔다. 그는 낭만과 감성을 사치라 여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낭만 이야기를 하면, 비싸고 높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그에게 야경은 비싼 것. 그러니 사치였을 터. 야경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신랑에게 나는 눈에 담아주기만 하면 만족하는 사람임을 이해시키기까지 오래 걸렸다.
“매년 불꽃놀이와 벚꽃놀이는 꼭 보고 싶어. 시골에 사는 게 좋지만 가끔은 감성을 채워주면 좋겠어. 야경 보러 한강에 종종 오자.”
만삭인 몸으로 야경을 보러 달려간 반포대교. 왠지 숨통이 트였다. 반짝거림에 감성이 말랑해져 신랑에게 물었다.
“신랑, 너무 예쁘지?”라고 묻자, 빈말이라도 맞장구 쳐줄만한데 감성이란 1도 없는 이 이성적인 사람은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서울 오니까 차 막힌다” 라며 허허 웃어댔다. 맥이 탁 풀려 이후로는 신랑에게 감성의 공유까지는 바라지 않기로.
올해 다녀온 여행지에서 호텔 로비에 커다란 다이아몬드 모양의 샹들리에를 눈에 담아왔다. 매시 정각에는 ‘반짝’이는 음향효과도 들리면서 샹들리에의 크리스털 방울들이 떨어졌다 올라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느다란 줄을 잡은 크리스털이 빙글빙글 춤을 췄고, 무지갯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음이 벅차오르는데 무엇이 차 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혼자 로비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객실로 돌아갔다.
신랑과 감성을 공유하지 않으니 혼자 채우는 일이 늘어간다. 오롯이 나를 위해 충전되는 꽤 근사한 정서적 안식의 시간.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나면 10시부터 12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소파에 길게 드러눕는다. 요즘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라운지 음악’ ‘멜로우 힙합’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재즈가 섞인 가벼운 휴양지 음색이다.
‘Nujabes’의 “Aruarian"도 좋고, ‘Re:Plus'의 ”Solitude"도 좋아한다. 소파에 누우면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대나무의 잎이 마주치는 소리, 블라인드 줄이 달그락대며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 가벼운 비트의 쿵작 대는 소리가 멀리 들리는 매미소리와 어우러진다.
숨을 고르고 책을 펼쳐 뒤적인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읽다 몸을 일으켜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정원에 심어놓은 하얗고 풍성한 묵수국이 땅을 향해 꽃대를 드리우고, 옆으로는 보랏빛 맥문동이 한아름 심겨 색감이 조화롭다.
별일 하고 있지 않지만 벅차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내게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