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공유 Nov 14. 2019

새 가슴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다.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점점 늘어날 때마다 약국으로 가 “우황청심원”주세요 하는 날도 늘어갔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던 몇 주간 사람들과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분위기의 중압감에 힘들었다. 수업 시작 전 손발이 차가워졌고,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아랫배가 간지러웠다. 현기증이 피잉 돌기를 여러 번. 수업 전 약국에 들러 우황청심원을 마시고 들어가곤 했다.          



  이십 대 때 승무원을 꿈꿨다. 비싼 승무원 학원을 결제하곤 몇 군데 면접을 봤다. 그중 가장 긴장됐던 곳은 중국의 한 항공사. 지금은 그렇다 하면 뭇매를 맞겠지만, 그 당시는 외모를 대놓고 보던 시절, 미인대회 출신자들을 무대 뒤에서 특채로 뽑아오기로 유명했던 항공사. 노메이크업 면접이 있었다. 비비크림이라도 옅게 바르고 가면 면접장의 스튜어디스들이 클렌징 티슈로 얼굴까지 닦아가며 검증했다. 피부결이 고운지, 문신이 있는지, 다리의 흉터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스타킹까지 벗고 면접장에 들어서야 했다.

  2차 면접이 있던 날 도착한 면접장. 잡지 모델 출신, 또 누구는 연예인 지망생이라 했다. 면접장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비율 좋고 늘씬하고 눈코 입 꽉 찬 작은 얼굴을 가진 여자들이 즐비했다. 체중과 키를 재는데 모두 앞 숫자가 4나 5였다. 내 차례.

  승무원이 내 체중을 부르려다 나를 한번 더 쳐다 보고는 “65Kg”을 외쳤다. 이곳저곳의 얼굴들이 나를 향하는 게 느껴졌다. 주눅 들었다.


 다섯 명이 함께 들어간 면접 장안에는 여섯 명의 면접관이 앉아 우리와 마주 보고 있었다. 다른 지원자들 순서를 지나, 내 차례가 되었다.

“김윤희 씨는 전공이 중국어네요? 중국말로 자기소개해보세요.”     

 며칠을 연습했었다. 입을 떼어야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다. 사람들의 모습이 일렁거리며 눈앞으로 다가왔다 저 멀리 가버렸다. 머리가 핑글 돌았다. 튼튼한 내 두 다리가 잘 버텨 쓰러지지 않나 싶었는데, 갑자기 무릎이 후덜 거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제발... 그만 좀 후덜거려... 제발..’ 의식하면 할수록 그런 내 뇌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릎은 열심히 박수를 쳤다. 숭구리당당처럼.  후들거리다 못해 이제는 몸이 휘청 거리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연신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머릿속으로는 ‘저 그냥 이대로 기절하게 해 주세요. 제발’이라고 외쳤다.      



  보기 좋게 떨어진 후, 비서로 경로를 틀었다. 입사한 뒤 처음 갖는 워크숍.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며 막내인 나를 억지로 내보냈다. 무대에 서자 한 번 더 핑그르르 눈이 돌았다. 숨이 막혔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려와서는 테이블에 앉아 엉엉 울었다. 한동안 무대에 나가 망신당하는 꿈을 꾸었다.      


  종종 그날 들을 떠올릴 때, 차라리 단호하게 거절할 것을. 혹은 맨 살까지 닦아가는 그곳을 박차고 나와버릴 것을 하며 통쾌한 상상을 하지만 거절도, 박차고 나오는 것 또한 용감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와서야 ‘인생에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네’ 하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종종 아찔하게 떠오르곤 한다.


이전 06화 발바닥의 꼬순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