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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공유 Nov 09. 2019

맞지 않는 신발

대발이로 불렸다.

                           

  어릴 때부터 큰 발로 놀림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 교회에서 성가 연습을 하는데 누군가 내 발을 가리키며 낄낄댔다. 목사님 아들이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내 발을 쳐다봤고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됐다. 그 아이를 제지해주길 바라며 선생님을 보았는데 그녀마저 얼굴을 움씰대며 웃음을 참았다. 그때부터 난 대발이로 불렸다.      





  언덕을 내달릴 때면 튼튼한 엄지발가락은 신발을 뚫어버리기를 여러 번. 친척들은 내 발을 보며 도둑 발이라 했다. “윤희는 아가씨 되면 구두도 못 신겠다?” 그 말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중학생이 되어 학생화를 사러 구두 매장에 갔다. 가장 날렵하게 생긴 구두에 억지로 발을 욱여넣었다.




  ‘구두, 신을 수 있다고!!!’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신데렐라의 언니처럼 발을 욱여넣었다. 매장 직원도 작다고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사야 했다. 그 날 못 신으면 영영 구두를 못 신을 것 같아 오기를 부렸다. 그날 밤 조금이라도 늘어나기를 바라며 꽉 끼는 신발을 신고 잤다.

  아침이 되었지만 신발은 여전히 작았다. 오히려 아침에는 발이 부어 신발을 신었더니 발등까지 볼록 올라올 만큼 꽉 끼었다.

  학교를 걸어갈 때는 절뚝거렸지만, 작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때 욱여넣은 발은 뼈까지 튀어나오게 했다. 큰 발에서, 못난 발로 변형이 됐다.      




  성인이 돼서 기성화 파는 곳에서 250mm라 나와있는 것들을 신으면 오묘하게 작았다. 얼른 벗어주기를 바라는 주인의 얼굴을 보고 나오기를 여러 번. 한 번은 매장 점원이 내 발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그 발은 남성화 신어야 돼요.”

  발이 크다는 것이 이토록 수치심을 안겨줄 만한 것인가? 몇 군데서 푸대접을 받은 내 발이 유독 초라해 보였다.



  그즈음 동대문에 수제화 매장이 하나둘 생겨 났다. 비록 기성품보다 다섯 배 넘는 가격이지만 편안한 구두를 제작해 신을 수 있었다. A4용지를 올리고 발을 따라 그림까지 그리며 발의 특성을 고려해 제작해 준다. 그렇게 내 취향 하나가 굳어졌다. 신발은 좋은 것을 사서 오래 신는 것이라고.      



  키 174이니 발이 255mm로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그간 나조차 부끄러워했던 내 발에게 미안했다.

  내 발은 귀족인데 여태껏 노비 대접을 받았구나. 알아주는 이 없이 그간 천대받았던 발에게 앞으로는 내가 잘 대해주겠노라고. 식물도 예쁜 말을 해주면 잘 크고, 못난 말만 하면 금세 시들어 버린다는 실험이 증명하듯 나는 남들이 헐뜯던 발과 손을 아끼려 했다.

  큰 발은 키와 무게를 지탱하기에 적당하다. 그래선지 넘어지는 일이 잘 없다. 발가락이 쫙 벌어져 무좀 생길일이 없고. 손이 커서 잡을 수 있는 것이 많고, 손톱이 커서 네일을 하면 더 눈에 뜨인다. 손가락이 길어 좋다고 장점을 찾는다.     


시원시원한 내 손.


  또 다른 사람들 손과 발을 유심히 보게 됐다. 맨 손톱이 잘 다듬어져 있으면 괜히 그 사람을 한번 더 보게 된다. 결혼 전 이성을 만날 때는 손과 발이 기준이 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페티시라는 취향 하나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 다듬어지는 것들, 그중 하나가 취향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다양한 역사들이 따라붙는다. 오밀조밀 다듬어 주변에 빚어 놓으면 나라는 사람을 그리는 형태가 생겨난다. 맞지 않는 신발에 욱여넣어 상처 받고 숨 막혀했을 내 발을 보며 생각했다.


불편함을 참으면서 어딘가에 속하려 하지 말 걸, 그럴수록 내게 남는 건 뾰족 튀어나온 뼈마디였는데... 이제는 편안함을 주는 것들로 채워나가야지. 어딘가에서는 꼭 맞는 신발을 만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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