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오른쪽 시선에 무언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샅샅이 살피면 어김없이 근처에 벌레가 있었다.
남들보다 벌레를 잘 발견한다. 벌레에 대한 레이더망이 미세하다랄까? 아마 어릴 때 본 미국 바퀴벌레 때문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서울로 이사 오면서 신축빌라에 입주했는데도 바퀴가 있었다. 날아다니기도 한다는 그 벌레는 굳이 날지 않아도 기어가는 빠른 몸짓만으로 충분히 두려운 것이었다.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마루로 나오면 옅은 불빛 틈으로 세내개의 검은 물체가 재빠르게 시야에서 번진다. ‘아, 바퀴벌레구나... 차라리 눈에 띄지 마라.’
한 번은 책상에서 공부를 하느라 고개를 숙였는데 시야 옆 책꽂이 사이로 빠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바퀴벌레다’ 에프킬라를 손에 쥐고는 방 이곳저곳에다 뿌려댔다.
‘방에 있는 건 못 참아. 빨리 나와’ 그때 소리가 났다. ‘트드득’ 벌레가 크면 걷는 소리도 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살짝 과장해 에프킬라를 반통은 뿌린 것 같다. 에프킬라를 그렇게 뿌려댔는데 바퀴는 약에 젖어 둔해졌을 뿐 죽지 않았다. 질긴 생명력과 빠른 이동력, 세균을 옮기는 특성 등등. 묘사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적나라하게 되는 나의 벌레에 얽힌 트라우마.
그 이후로 나는 작은 벌레에도 예민하게 군다. 처녀 때나, 결혼해서나 집에서 벌레가 나오면 아빠나 신랑이 집에 올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한다면 의자나 테이블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아이와 둘이 있으면 내가 벌레를 잡아야 했다. 지금 시골집에서는 돈벌레가 골치였다. 발이 많아 빠르다. 발견하면 온 몸이 쭈뼛선다. 이사 온 초반에는 하루 세네 마리씩 발견했다. 오두방정 호들갑을 떨다 책을 던지거나 , 커다란 통을 덮어두기도 했다.
그러던 내게 벌레 잡는 특급 아이템이 생겼다. 바로 마루용 찍찍이 테이프다. 일반 돌돌이보다 길어서 끈끈한 면에 돈벌레를 붙이면 시선과 손을 멀리 둔 채로 벌레를 잡을 수 있어 간단하다. 혹시 바닥에 떨어질까 싶어 변기 안에 세워 놓는다. 퇴근한 신랑은 돌돌이를 찌익 떼어 다시 걸어 놓고 나는 그다음 날이 되면 돈벌레를 붙여 변기에 세워 놓고는 했다. 지금은 방역을 해서 거의 안 나오지만 ‘롱돌돌이’는 요긴했다.
신랑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벌레를 손으로 잡는다. 안 징그럽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도 막내아들이라 해본 적 없고 징그러운데, 가장이 되었으니 해야 될 것 같단다. 귀한 아들이었을 텐데 주춤하는 기색 없이 벌레를 잡을 때는 뭉클해진다.
시골집이라 지네가 가끔 나오는데, 거무티티한 뻘건 몸으로 마룻바닥을 타닥대며 S자로 휘어대는 걸 보면 뒷목부터 소름이 쫙 올라온다. 딱딱한 등딱지는 아무리 돌돌이로 붙여 보려 해도 그럴수록 더 자극만 시켰는지 더욱 빠르게 꿈틀거렸다. 어찌하지 못한 채 도망만 못 가도록 빗자루로 동선을 막고 계단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때 마침 신랑이 회사에서 놓고 간 게 있다며 집에 들른 것이다. 오빠는 신속하게 지네를 처리했다. 좀처럼 심쿵하는 일 없는 우리 사이인데 그날 신랑은 좀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