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 일정을 계획했다. 미리 계획하고 와서 도장 깨기를 하듯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하루 전날 내일 뭐 할까? 하며 즉흥적으로 일정을 짜는 것도 매력적이다. 혹시나 마음대로 안 되더라도 '아니면 말고, '라는 생각을 하면 뭐든지 편하고 쉬워진다.
유럽 여행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여러 나라가 국경과 맞닿아 있어 일정만 잘 짜면 당일치기로 다른 나라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도시를 가던 하루 만에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모든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건 어렵겠지만, 국경을 통과하며 만나는 다른 나라의 국기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또 그 나라의 새로운 언어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짜릿한 경험이 된다.
윤서 아버님은 스위스를 추천했다!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 스위스? 취리히까지 들어가 1박을 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독일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기에 좀 힘들더라고 당일 코스가 더 당겼다. 스위스 국경 도시 샤프하우젠-Schaffhausen에 있는 'Rheinfall- 라인 폭포'를 검색해 보니 유람선 투어가 있고 폭포 아주 가까운 지점까지 들어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게 분명했다. 다양한 루트와 시간의 보트 회사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일부 티켓이 남아있었다. 1인 11프랑 ( 환율 1 CHF 1,500원 / 약 15,000원 정도) 30분 동안 큰 보트를 타고 돌아보는 코스인데 스위스 물가를 생각하니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인터넷 결제를 하는데 유로가 아닌 프랑이라고 하니 뭔가 로맨틱하고 더욱 흥분되었다. 윤서네 집 (빌링엔-슈베닝엔)에서 스위스 국경 마을 (Schaffhausen)까지는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자동차로 간다면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5인용 승용차와 무제한 기차 티켓이 있고 총 7인이다. (어른 3 어린이 4) 윤서 아버님의 추천대로 우린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기로 했다. 점심 도시락과 돗자리 등을 챙겨 차로 이동하기로 한 1조, 두 손 가볍게 기차 여행을 원하는 팀이 2조였다.
사춘기 감성이 절정에 이른 13살 지환이와 윤서는 차량 이동에 합류하고 움직이는 자체가 즐거운 에너지 충만한 행동파 초등학생 3, 4학년 려환이와 예윤이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나는 자연스레 2조 조장이 되었다.
기차 팀 먼저 집을 나서 먼저 징겐-singen 행 열차를 탔다. 징겐은 독일의 국경 마을이다. 여기서 스위스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독일어도 스위스 말도 전혀 못 하지만 우리에겐 친절한 구글맵이 있다. 결혼 전만 해도 여행할 때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을 무겁게 들고 다녔는데, 이젠 휴대폰에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는 구글맵이 있으니 여행을 할 때마다 정말 좋은 세상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독일어에 자신감 뿜뿜한 11살 예윤이도 있으니 걱정이 없다.
독일의 기차는 상당히 쾌적한 편이었다. 금요일이지만 아직 주말 시작 전이라 그런지 상당히 한가했다. 한 살 터울 려환이와 예윤이는 '케미'가 잘 맞는다. 모험심도 있고 유머도 있다. 둘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쫑알쫑알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형아 바라기 동생이지만 친구나 누나들이랑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의 까르르 수다 소리를 들으며 기차 창밖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방송에서 "schaffausen" 단어가 들린다. 오! 스위스에 도착했나 보다. 기차가 천천히 승강장으로 들어가니 강렬한 레드에 크로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려환아 ~ 내리자!! 예윤이가 기차에서 하차할 때마다 불안해하는 려환이를 알아차리고 챙겨준다. 고마운 예윤이~
기차역 밖으로 나오니 1조 차량팀이 먼저 도착해 있다. 무슨 미션을 수행한 것처럼 반갑고 즐겁다. 라인 폭포까지 10분 거리에 있어 인원 초과이지만 차에 구겨 타본다. 혹시나 스위스 교통경찰 눈에 띌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라인 폭포 입구. 주차장 너머로 멀리 폭포가 보이는데 와~~ 장관이다. 높이가 24m 폭은 150m에 달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평지 폭포라고 한다. (몇 해 전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도 보았지만, 이 웅장함은 그들과는 또 달랐다.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 게다가 스위스 국기와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기가 막힌 비비드 컬러가 조화롭다.
시간 맞춰 예약한 보트를 타러 갔다. 진한 핑크의 보트가 너무 예쁘다. 보트를 타고 가며 들을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를 나눠주셨는데 다행히 한국어가 있다.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아 강바람을 즐기며 오디오를 열심히 듣는다. 겁 없는 려환이와 예윤이는 배 머리 쪽에 앉았다. 보트가 서서히 속력을 내자 물에 거품이 일기 시작한다. 강 아래에 있는 어떤 식물 때문이라는데 실제로 주방 세제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유람선이 다니는 강이지만 강 한편에서는 수영을 하거나 보트를 타는 학생들도 제법 눈에 띄었는데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멋있다. 폭포 옆으로 보이는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는데 예전엔 독일과 스위스 국경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통관 업무를 보던 세관이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폭포 가까이 도착했다. 폭포 가까이에 갈수록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웅장하고 물줄기가 배까지 튀어 너무 시원하다.
1미터 거리도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거친 물살과 웅장한 폭포 소리가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겁도 없이 신나게 즐긴다. 나도 아이들의 인생샷을 찍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이었다.
30분 정도의 라인 폭포 유람선 투어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투어 후에 미리 준비해 온 점심을 위해 근처 공원 벤치에 빨간 체크 돗자리를 펼쳤다. 점심 메뉴는 유부초밥과 샌드위치, 스위스에서 맛보는 최고의 소풍 만찬, 아이들과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끼니 걱정을 하기 마련인데 윤서네 가족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하다.
돌아올 땐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모두 1조 차량을 선택했다. 민경 씨와 난 은근히 좋았다. 정말 잠깐이지만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역 부근을 돌아볼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곳에 그리고 취리히까지 들어가 여유 있게 스위스를 여행하고 싶다. 아쉬움이 가득한 짧은 스위스에서의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또 계획을 잡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초 긍정 마인드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