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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

<독일 시민처럼 여행하기 - Freiburg >

by 왕드레킴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독일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도시가 있었는데 바로 프라이부르크다.


예전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본 적이 있고 독일 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려환이 학교 선생님께서도 꼭 가보라고 추천하셨던 도시인데 마침, 빌링엔-슈베닝엔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어 근교 도시 여행으로 딱이었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친환경 도시로 현재 에너지 건축물이 아니라면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고, 낮에는 중앙 광장 중심지로 차가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친환경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되어 있어 더욱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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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서둘러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탈 때마다 둘째 려환이는 걱정을 한다. 몇 해 전 프랑스 여행 중에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기 위해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4명이 기차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한 명이 미처 내리지 못한 채 문이 닫혀버리고 기차가 떠난 것이다. 남은 여학생 3명은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아마도 그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결국은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걸 바로 앞에서 목격한 어린 려환이는 본인도 한눈팔면 엄마 아빠랑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때부터 기차에 대한 트라우마? 가 생긴 거 같다. 도착할 시간이 될 즘 내릴 준비를 시작하면 아이는 불안해한다. 혹여나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나한테 밀착을 하며 팔을 꼭 잡는다. 꼬꼬마인 아이가 어느새 커서 호기심도 많고 모험도 즐기는 씩씩한 꼬마로 잘 크고 있지만, 아직 엄마 품이 가장 안전한 막내아들이다.


빌링엔-슈베닝엔에서 프라이부르크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인파가 상당하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가 있고 친환경 도시로 유명해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듯하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1457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영토 안에 빈 대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한 대학교이다. 독일에서 다섯 번째로 오래된 대학교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출처 naver 지식백과>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뮌스터 대성당으로 갔다. 중앙역에서도 교회 탑이 보일 정도로 높은 이 성당의 높이는 125.83m라고 한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프라이부르크 중앙 광장에 중우 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당 앞엔 뮌스터 플라츠 광장이 있고 이 광장에서 매일 농산물 시장과 플리마켓이 열리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반경이라 마켓 광장의 카페들은 막 오픈을 했는지 분주해 보였다. 이곳에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 핫도그를 먹기 위해 광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려환이가 화장실을 찾는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마땅히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다. 앞에 보이는 노란 파라솔이 예쁜 카페 앞 테이블을 정리 중인 직원한테 아이를 가리키며 화장실 좀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단번에 "No." 거부를 당했다.

아이는 급한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이 카페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를 달라고 하고 자신 있게 눈에 힘을 줘, 다시 물었다. "Excause me. Where is Toilet?" 그제야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는 직원. 휴~ 얄미웠지만, 아이가 급하다는데 어쩌겠냐. 덕분에 계획에 없던 모닝세트 ( 카페라테와 크루아상 세트, 키즈용 오렌지 주스 )를 주문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진한 라테를 한 모금 마시고 성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순간도 나쁘지 않다. 사실 24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붙어 있자니 아무리 즐거운 여행이지만 잠깐의 쉼도 필요할 때가 있다. 5분이 지났을까? 이 여유가 좀 더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찰나, 려환이가 시원한 표정으로 달려 나온다. 지환이도 다른 일행과 먼저 이동하고 있기에 남은 커피를 단숨에 '원샷'하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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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주변에는 모자를 앞에 두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는 젊은이들과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성당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저기 소시지 굽는 연기와 냄새가 그야말로 진동이다. 여러 개의 핫도그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는데 각각의 가게들이 다른 컬러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지환이와 만나 어느 집으로 갈까? 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디카프리오 닮은 남자가 우리 가게가 제일 맛있다는 표정으로 추파를 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블루 유니폼을 입은 가게(포장마차라고 해야 하나?) 디카프리오 핫도그 집으로 선택했다. 정말 길고 육즙 가득해 보이는 먹음직스러운 소시지들을 보니 독일에 온 게 실감이 난다. 갑자기 한국에 있는 신랑이 생각났다. 고기뿐만 아니라 직화로 구워낸 소시지를 정말 좋아하는 신랑인데 아마 함께 왔다면 종류별로 다 맛보겠다고 욕심을 부렸을 것이다. 원하는 소시지를 고르고 빵을 고르면 '프라이버거- Freiburger'가 완성된다. 물론, 핫도그만 주문할 수도 있다. 30cm는 되어 보이는 긴 소시지가 3.50유로! 려환이 화장실 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먹은 모닝세트 때문에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와 아쉬울 정도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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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이 꽤 덥다. 뜨거운 햇살이 내려 찌니 아이들은 계속 물을 찾는다. 한국이라면 얼린 생수를 여기저기 팔고 있겠지만 여긴 얼음 없는 나라가 아닌가. 시원한 물을 원하지만 미지근한 물만 있다. 갈증 해소는 부족한 듯하지만, 배를 채운 우리들은 성당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며 걸었다. 아기자기한 예쁜 소품들, 핸드메이드 우드 크래프트, 특히 나무를 이용한 장식품과 액세서리가 눈에 많이 띈다. 농수산물 마켓 쪽으로 가니 다양한 과일들과 채소들이 있다. 신선해 보이는 유기농 산딸기 (himbeere)를 한 박스 샀다. 꽃집도 구경하고 라벤더와 각종 허브를 말려 판매하는 노점상도 한참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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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시내에는 거의 모든 길을 따라 흐르는 '베헬레 Bächle '라고 불리는 수로가 있다. 실개천이란 뜻을 가진 이 수로를 통해 도심의 기온과 습도를 조절해서 탄소에너지 사용을 줄여준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엔 수로에 물은 없어서 내심 아쉬웠다. 주변에 늘어선 노점에선 수로에서 놀 수 있도록 나무배와 개구리 등 예쁜 목각 소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수로에 물이 있으면 아이들과 한참을 시원하게 놀았을 텐데 코로나 때문인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때문에 기름값과 전기세, 물세까지 엄청 올랐다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궁금했다.

수로를 따라 1미터 간격이나 될까? 전차가 다니는 레일이 있다. 위험할 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수로에 앉아 전차가 지나가는 아찔함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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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고 또 걷다가 이제 다시 출출해진다. 오늘 점심은 독일 전통의 학센과 슈니첼을 먹어보기로 했다. 구글 검색기를 돌려 근처에 있는 괜찮은 식당을 찾았다. Martin's Brau는 음식도 맛집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직접 맥주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함께 있다. 독일에 왔으니 수제 맥주는 필수 아닌가? 아이들과 함께 서둘러 식당에 도착했지만 대기가 길다. 덥고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달래 20분 정도 대기 후에 겨우 원하던 테라스 자리에 앉았는데 식당 직원이 메뉴를 가져다주면서 하는 말. " 여기에선 학센을 주문할 수 없어요!" 뭐라고? 학센 주문이 안 된다고? 품절이냐고 물어보니 학센은 벌(bees)이 많이 달려들어 실내에서만 주문할 수 있다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아이스크림이나 디저트를 카페 테라스에서 먹을 때마다 작은 꿀벌들이 달려들었다. 유난히 많이 날아다니는 게 파리나 모기가 아닌 벌이라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10여 분을 더 기다려 실내로 들어갔다. 에어컨이 없는 독일 식당이 좀 답답해서 야외 테이블을 원한 건데, 꼭 학센을 먹어봐야 했기에 더움은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주문한 메뉴는 모두 환상적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족발과 비슷하다고 들었던 학센은 실제로 족발과 프라이드 치킨의 중간 정도였는데 '겉바속촉' 그 자체로 예상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맛있었고 독일의 돈가스라고 불리는 슈니첼은 아이들의 취향 저격. 거기에 사이드메뉴로 함께 서빙된 백김치맛의 독일식 절임 양배추 '사우어크라우트'는 느끼함을 잡아주는 신의 한 수였다. (사우어그라우트는 이날 이후 마트에서 구매해 스페인-아이슬란드까지 여행하면서 요긴하게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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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더위도 잊고 수제 맥주 맛에 푹 빠져있을 때 아이들은 실내가 답답하고 덥다며 근처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버블 밀크티를 마시러 가겠다고 한다. 아이들끼리 보내도 될지 잠시 고민했지만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한 경험이 있고 독일어도 능숙한 윤서와 예윤이가 있으니 걱정 없이 환브로 동행을 허락했다. 때로는 아이들이 어린들보다 훨씬 더 용감하다. 호기심은 탐험을 부르고 아이들은 그 탐험의 세계에서 독립심을 기르며 쑥쑥 성장해 나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낯선 곳에 가면 화장실도 함께 가달라고 했던 꼬마들이 점점 용감해지고 있다. 덕분에 잠시나마 어른들끼리 그동안의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이 30분이나 지났을까? 아이들이 헉헉대며 흥분하며 돌아왔다. 밀크티 가게에서 축구선수 정우영을 만났다는 것이다. 축구선수 정우영은 프라이부르크 구단에서 뛰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이다.

"사진 찍었어? 사인받았어?"

아이들도 순간 놀라 아무것도 못 하고 지나쳤다고 하길래,

" 아이고 그냥 따라갈걸~ "

하며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들 없다고 좋아할 땐 언제고 말이다.


배불리 먹고 걷고 또 걸었다. 구시가지는 보도 블록이 돌바닥으로 운동화는 필수이다. 한참을 구경하며 걷다가 아이들이 발밑에 무언가를 발견했다. 작고 네모난 청동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작은 청동판에는 사람의 이름과 연도, 그리고 아우슈비츠 (Auschwiz)라고 쓰여 있었다. 마지막 여행의 경유지를 폴란드로 결정한 후 신랑이 아우슈비츠 방문 계획을 잡았다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만 11세 이하 어린이는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를 보고 고민하다가 계획을 변경했던 그 아우슈비츠 수용소. 아이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아마 그때의 희생자 이름일 거야" 정확한 정보가 없었기에 사진만 찍고 지나갔다. 나중에 여행 후 찾아보니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패키지여행을 가면 가이드가 방문하는 지역의 깨알 같은 역사와 정보를 주는데 환브로의 역사 선생님이자 가이드 '구라미 여행사'사장님이 함께 하지 못한 독일 여행이 좀 아쉽긴 했다. 이럴 땐 남편의 잡학 다식함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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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0월 22일, 나치의 추종자였던 로베르트 하인리히 바그너가 독일 서남부 지역의 유대인 이송 명령을 내렸다. 그때 이 도시에서도 350명의 유대인이 남프랑스로 옮겨져 강제수용소에 갇혔다. 그들은 대부분 그곳에서 사망했다. 1942년 7월 18일, 이 도시에서 잔명을 유지하고 있던 소수의 유대인들이 다시 체포되었다. 이번에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본래 공회당이 있던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예전에 유대인이 살던 곳에는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청동판을 부착해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출처] 생태 도시 프라이부르크, 유대인의 애환이 서린 독일 남서부의 미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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