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민처럼 여행하기 - 트리베르크, Triberg >
오늘은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트리베르크에 가보기로 했다. 차로는 30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한 차에 다 탑승할 수 없는 인원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우리에겐 무제한 언리미티드 탑승이 가능한 9유로 티켓이 있으니 걱정 없다. 처음 타보는 DB 독일 일반 버스. 참, 코로나가 아직은 진행 중이라 대중교통 (버스, 기차)을 이용할 땐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한다. 버스에 올라타니 독일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드문드문 앉아 있다. 가는 길이 스위스 방향이라 그런지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을 둘러싸고 키 큰 나무들이 쭉쭉 뻗어있고 가끔 나오는 산장처럼 생긴 목조 건물들이 예쁜 엽서에서나 보는 장면이다. 버스 안엔 에어컨이 켜져 있는지 꺼져있는지 오랜만에 마스크를 꼈더니 좀 후텁지근하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독일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마스크 벗는 게 어색했는데 이틀 지났다고 또 금세 답답하다니.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버스 안에 있던 탁한 공기가 뭔가 모를 냄새가 금세 환기가 되는 거 같다.
트리베르크는 뻐꾸기시계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뻐꾸기시계가 있다고 한다. 아주 오랜 옛날 산자락에 둘러싸여 겨울이면 먹고살기 힘들었던 이곳 사람들은 시계를 만들어 연명했다고 한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2차선 도로를 몇 차례 오르고 내리자 예쁜 목조 건물들이 쭉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전 갔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랑 비슷한 느낌도 나고 화면으로만 봤던 스위스 느낌도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은 커다란 뻐꾸기시계가 있는 상점으로 달려간다. 15분에 한 번씩 나무집에 있는 뻐꾸기가 나와 '뻐꾹뻐꾹" 하며 노래를 부르고 옆에 있는 인형이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는데 뻐꾸기 소리가 정말 리얼하다. 녹음을 해 놓았나? 싶을 정도로 청량하고 이쁘다.
마음 같아선 쇼핑부터 하고 싶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트리베르크 폭포이다. 세계폭포 데이터 베이스(World Waterfall Database)에 따르면 이 폭포는 독일에서 2번째로 높은 폭포로 151m에 달한다고 한다. 독일 남서부 삼림 지대인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의 소나무로 뒤덮인 언덕에서 숲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데 7단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폭포 입구 매표소에 땅콩을 팔고 있다. 이 산에 다람쥐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는데 만나면 간식을 주겠다고 어린이 4명이 각자 땅콩 한 봉지씩 들고 출발했다. 땅콩 봉투에 고소한 향기가 올라와 하나 맛을 본다는 게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며 다람쥐를 만나기도 전에 땅콩 한 봉지를 다 까먹은 거 같다. 10분쯤 올랐을까? 다람쥐가 나타났다. 한 마리가 아니다. 강릉에서 쉽게 보이는 청설모랑은 또 다른 비주얼의 진짜 그림책에 나오는 다람쥐였다. 아이들이 조심스레 땅콩을 내미니 겁도 없는 다람쥐들이 다가온다. 겁 없는 다람쥐들과 아이들은 한참을 자연림에서 놀았다.
이 산은 해외 관광객보다는 국내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느낌이었는데 폭포로 가는 등산로가 비교적 짧은 거리라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딱 좋았다. 트리베르크 폭포는 30분쯤 올라가니 만날 수 있었는데 숲 사이로 굽이굽이 쏟아져 내려서 그런지 실제로 중간 지점에서 봤을 땐 명성처럼 그렇게 높은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이끼로 덮인 바위들과 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볍게 하이킹을 하고 시원한 폭포도 만나고 내려와 뻐꾸기시계가 가득한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 안엔 뻐꾸기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내부를 볼 수 있는 대형 시계가 있어 아이들과 한참을 멍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소비 욕구가 들끓는다. 비싸고 크고 무거운 이 뻐꾸기시계를 하나 장만하고 싶은데 어떻게 들고 간담, 우리의 여행은 아직도 시작에 불과한데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꼭 소장하고 싶은 물건들을 발견하게 되지만 이고 지고 여행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민경 씨가 "언니, 여기에 또 언제 오겠어? 질러 질러!! 내가 택배로 보내줄게!!.”
‘그래, 내가 여기 또 언제 오겠어. 안 사면 분명히 두고두고 생각이 날 거야. 그래. 지르자~ 잘 보관했다가 택배로 보내줄 수 있는 사람도 있는데 망설일 필요 없지!! ’
너무 많은 종류의 뻐꾸기시계들이 여기저기서 노래를 해며 "절 ~데려가 줘요~" 하는 거 같았다. 모두 핸드메이드 작품이라 디자인이 조금씩 다 달라서 고르기가 쉽지 않아 결정장애인 난 아이들에서 선택의 기회를 넘겼다. 의외로 빨리 결정한 두 아들. 굵직하고 심플한 멋진 나무 조각이 있는 시계를 선택했는데 내 마음에도 쏙 든다.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룰루랄라~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