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to 가우디>
어렵게 도착한 바르셀로나. 계획대로라면 점심쯤 도착해 숙소 주변을 둘러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먹었어야 하지만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건 밤 8시가 지나서였다. 해가 길어 밖은 아직 환했지만 꿉꿉해진 우리는 여장을 풀고 씻어야 했으므로 오늘 일정은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땅히 문 연 식당이 없어서 숙소 근처에 있는 그로서리 마트에 가서 신라면 한 팩과 6개 들어 있는 하얀 달걀 한 꾸러미를 샀다. ( 한국 라면의 인기가 얼마나 좋은지 유럽 어디를 가든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
해외여행 중 종일 이동하느라 고생한 아이들에게 라면은 큰 만찬임이 분명하다.
다음 날, 미리 예약해 둔 구엘 공원에 가기로 했다. 스페인의 여름은 덥다. 내리쬐는 강한 햇살은 도보를 많이 해야 하는 관광객에겐 꽤 힘든 요소이다. 그리고 스페인에도 얼음물은 없다. 구엘공원 가는 경로를 구글맵에 검색하니 숙소에서 가까운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Liceu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Vallcarca역에서 하차한 후 공원 입구까지 도보로 9분 거리라고 친절하게 구글맵에서 안내해 주었다. Vallcarca 역에서 나와 이정표를 따라 걷는데 자꾸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아침부터 내려째는 햇살에 준비해 간 물을 입장도 못 하고 다 마셔버렸지만 간간이 같은 목적지로 가는 듯한 사람들이 보여서 따로 의심하진 않았다. 지도에서는 9분이라고 했지만 20분은 넘게 헥헥거리며 걸어 올라간 거 같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공원 정문 입구가 아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구엘 공원의 정문이 아닌 구엘 애완견 공원 (Àrea per a gossos Park Güell). 분명히 검색은 '구엘 공원'으로 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뿔싸! 아이들은 이미 등산과도 같은 이 상황에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공원 앞 매표소 직원이 지도를 보며 사람이 들어가는(?) 정문 매표소를 알려주셨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좋으련만 정문 입장만 가능하다고 했다. 정말 택시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후문 매표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다시 정문까지 20분을 걸어서 정문에 도착했다. 그나마 정문까지는 내리막길이라고 아이들을 다독거리면서,,,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도 구엘 공원을 찾은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신혼여행 때 와보고 13년 만에 두 아들과 함께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아이들과 해외 문화유산이나 박물관 등을 방문하기 전에 보통 작은 미션을 준다.
관련 영상을 찾아보거나 책을 읽고 오는 것인데 실제로 현장에 왔을 때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된다.
국, 영, 수 공부는 선행을 시키지 않는다는 게 우리 집의 교육 철학이지만 여행은 선행을 시키는 셈이 되는 건데, 아무 정보나 상식 없이 오는 것보다 관련 책이나 영상을 미리 보고 오면 아이들이 작품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책의 경우는 따로 구매할 필요 없이 평소엔 잘 보지 않은 동화책 전집이나 역사책을 찾아보면 스페인의 역사나 인물에 대해 나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보고는 어릴 때 별생각 없이 봤던 책을 곱씹어 보게 되어 더 좋아하기도 한다.
요즘 여행을 주제로 한 티브이 프로그램도 많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구엘 공원은 처음 고급 주택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엄청난 투자가 들어갔지만 결국 자금 부족으로 분양사업에 실패하고 완공되지도 못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공원으로 남게 되어 구엘의 이력엔 치명타를 안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구엘 덕분에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정원(Jardins d'Austria)
최초 구엘공원 건립 시 60채의 주거 지역 부지로 설정되었던 곳인데 구엘공원으로 만들어지면서 오스트리아로부터 야자수 나무를 기증받아 이름을 오스트리아 정원으로 지었다고 한다.
가우디의 집
현재는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위를 시킬 겸 들어갔는데 ( 입장료 별도 5.50유로) 가우디가 1906년부터 1925년까지 실제로 생활했던 집이었다. 가우디가 디자인하고 직접 사용한 선이 아름다운 가구들을 볼 수 있고 벽면과 천장의 타일 디자인이 너무 고급스럽고 우아해 인상적이었는데 그가 사용한 침대는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긴 천재 건축가이지만 그의 삶은 상당히 검소했던 거 같다. 전차에 치여 쓰러졌을 때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 가우디가 골든 타임을 놓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용의 계단 (도마뱀 분수대)
공원 입구이자 출구에 있는 계단 위에 모자이크된 도마뱀 분수가 있다. 구엘 공원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데 도마뱀 분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분수의 상단부에 있는 자연광장과 살라 이포스틸라의 정수장치를 통해 내려온 것이고, 자연적으로 정화되어 식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구엘공원이 지어진 펠라다 산은 높은 지대에 있어 생활용수가 부족했고, 식수 공급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구엘공원의 식수 보충을 위해 가우디가 설계된 수자원 저장시스템은 도마뱀 분수와 연결되어 물을 순환시켰던 것이다. 현재 이곳은 주고 지역이 아니지만 구엘공원 최고의 인증샷 사진촬영지로 유명하게 되었다. 유명한 분수대엔 사람들이 동전을 던진다.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것인데 믿거나 말거나 환브로도 동전을 던졌다.
포르티코(portico): 파도회랑
포르티코는 공간을 지탱하기 위한 기둥의 모음을 지칭하는 말인데 구엘공원 상부 지반을 지탱하는 기둥의 모양이 큰 물결을 연상시킬 만큼 역동적이라 파도동굴로 부른다고 했다. 비가 오거나 햇빛이 강한 날 세탁부들의 통로로 사용되었다는 동굴. 우리가 방문했을 때엔 보수 공사로 진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
우리의 더움을 식혀주기에 좋았던 장소 하이포스타일 룸. 고대 그리스 도시 델포이의 신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이곳은 86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천장은 하늘의 해와 달, 구름을 나타내는 장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천장과 바닥을 연결하는 이 기둥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바르셀로나는 무척이나 덥고 건조해 자연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었던 거 같다. 초기에는 구엘 빌라 분양 부동산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본래 이곳을 조성한 목적은 장터 또는 상설 매장이었다고 한다. 구엘은 60채의 빌라가 완공되고 많은 사람이 이곳에 모여드는 활발한 장터의 모습을 상상했을까? 결국 분양에 실패하여 당초 목적대로 활용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찾아 더위를 식히고 바닥에 누워 천장을 감상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경비원 숙소 (Casa del Guarda)
출입구 양옆에 귀여운 집 두 채가 있다. 헨젤과 그레텔 과자 집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이 예쁜 집은 경비실과 그 경비원의 숙소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붕 위엔 입체형 3D 십자가가 있고 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우디의 특징으로 다양한 가우디 건축물에서 볼 수 있다.. 현재 한쪽 건물의 내부는 박물관과 기념품 매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는 곳곳마다 자연주의와 곡선의 미학을 느낄 수 있고 깨진 타일을 모자이크 형식의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작업한 벤치와 도마뱀 분수 등은 구엘의 어릴 적 동화 속 이야기와 상상력이 실현되었기에 환브로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타일의 모양을 관찰하기도 하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살짝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구엘공원에서 나와 늦은 점심으로 스페인식 요리를 먹기로 했다.
역시 구글맵의 도움을 받았는데 대성공! Bosc Palerm 지중해 요리 음식점이었는데 기대했던 해산물 빠에야는 아는 맛이라 보통이었지만 깔라마리와 가자미 요리는 정말 최고였다. 더운 지역의 지중해 사람들은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음식이 짜다. 그래서 음식을 주문할 때엔 꼭 소금을 빼달라고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실수로 소금을 들이부었나 의심할 정도의 짠 음식을 서빙 받을 수도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지환이가 보고 싶은 랜드마크 중 하나다.
아직까지도 완공하지 못한 채 141년째 여전히 건축 중이라는 사실은 아이들에게도 놀랍고 신기한 사실일 테니,, 가우디가 사망한 지 100주년이 되는 2026년이 완공 목표라고 하는데 지켜볼 일이다.
오후 3시에 성당 관람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랜드마크이다.) 점심을 먹고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계단을 나오자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진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높이의 성당이 바로 눈앞에 있다.
가우디가 설계하고 완공하지 못하고 이곳에 묻힌 바르셀로나 대표적인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Basílica de la Sagrada Familia는 성 가족 성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혼여행 땐 내부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봤었는데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 내부 관람을 하기로 했다. 성당의 내부는 외부와는 또 다른 웅장함과 거룩함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밖에서 들어오는 붉은빛과 푸른빛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오후 3~ 4시 이후 해가 넘어갈 무렵까지 성당 내부가 가장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밖에서 본 성당의 모습이 기괴할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고 거친 느낌이라면 성당 내부는 고귀한 느낌이 드는 sand 컬러의 부드러움이 있고 가우디만의 곡선이 아름답게 살아있다. (거대한 공룡의 뼈대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입 벌리고 관람하다 보니 목이 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점심으로 소금을 넉넉히 넣은 스페인 요리를 먹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음료가 간절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후문 쪽에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영국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얼음이 들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 우리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은 듯 기뻤다.